30대의 기록/일상기록

20230630 상반기

생즙 2023. 6. 30. 19:50


올해의 절반이 끝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자꾸만 달력을 뒤적거리고 있다. 벌써 6월의 끝자락이다.

1.

상반기의 우리 부부는 너무 열심이거나 게으르거나 했다. 나는 강의를 듣고 책들을 사고 공부하며 기록하는 일에 열심을 냈다.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건 청구하고 아닌 건 사비도 쓴다. 그런데도 늘 허덕이며 매일 나의 에고와 맞서는 기분이다.

경험만큼 큰 자산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글쎄? 싶다. 경험에 의존한 판단은 포장된 견고한 편견이 되어 종종 방해가 될 때가 많다. 그래서 한때는 난 참 똑똑한 사람인데 하고 생각했는데 살수록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 라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 알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무지함에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다. 이제라도 다양한 지식들을 소화해 내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 채워야겠지.


2.

올해 초 우리 부부는 승진을 했다. 특히 그는 두 번째 조기 승진이었다. 서로에 대한 축하를 핑계 삼아 겸사겸사 여행도 다녀왔다. 원래라면 쉽지 않았을 텐데 이번엔 운이 좋았다. 마침 회사 휴일이 겹쳐 하루 휴가만으로 황금 같이 귀한 여행을 하고 왔다.


3.

상반기를 돌아보며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건 바쁘다는 이유로 규칙적으로 해온 것들을 소흘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마음먹어야 지킬 수 있었던 것들이다.

우리는 약속한 요일마다 연습장에 갔고 최대한 밥을 잘 챙겨 먹으려 애썼다. 아침엔 사과나 시리얼을  저녁엔 직접 지은 밥을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덕분에 그는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고 나는 칼을 다루는 솜씨가 늘었다.

게다가 얼마 전 우리 난에 꽃이 폈는데 신이 난 그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난도 그도 대견했다.


4.

체력 문제로 고민이 많다. 밀도 높은 시간을 버텨내려 진한 커피에 의존했던 매일이 쌓이니 피곤을 감당할 수 없는 날들이 기어코 오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잠에 꽁꽁 묶인다. 별로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니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 밖에 안돼.

- 드라마 <미생> 8화 중


드라마 미생에서 엄청 공감했던 대사. 점점 피로감을 이기지 못해 이대로 고여도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올라오고 있어 6월 마지막 주말은 정말 정말 푹 그리고 잘 쉬고 체력을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5.

어떤 이들이 말하길 내가 본인들의 어떤 결정이나 태도에 영감을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의 행동이나 언행이 다른 것에 영향을 준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대상이 일이든 뭐든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뭘 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하나 싶어서 충격적이기도 하고 걱정스러웠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고 해도 부대껴 사는 한 알게 모르게 내가 영향을 받는 것처럼 나도 영향을 주겠구나 했다.

무슨 일에서든 담대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어딘가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면 이롭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6.

엄마가 내게 단 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콧물이 나왔고 보이지 않는 마음이 쿵 하고 내리앉았다. 사실 그동안 표현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있긴 했었지.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고 혼자 여러 번 시뮬레이션했던 일인데도 나는 쭈굴 납작해진 찐빵이 되어버렸다.

그 후 시꺼먼 죄책감과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지극히 부정적인 생각들이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아무때나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며 나를 끌어내려 마음을 헤집어논다. 다시 부풀어야하는데 아직도 한심한 쭈굴이다.


7.

블랙홀에 들어가는 사람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빛에 가까운 속도가 되면 빨려가는 사람의 시간은 점점 느려진다고 한다. 블랙홀에 들어가는 순간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이 완전히 멈춰 버린다는 거다.

울적한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전의 즐거운 기억은 옛일 같거나 잊어버린 것들이 태반인데 나쁜 기억은 떠올리는 순간 감정까지도 생생해져 그 시절로 돌아가버리니깐.

빵굽기에 심취해 요즘엔 팥빵을 굽는다

8.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변화가 있었고 울적해봤자 돌릴수도 없고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지않니?

다행히 그동안 살아오면서 분명하게 배운 건 지금의 행복은 과거의 불행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소소한 행복은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에 쌓인 근심들을 잔잔하게 정리해 주는데 작은 파도는 힘이 세서 철썩하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여기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한다. 배우자 머리카락 헝클어뜨리기, 산책, 맛있는 음식 먹기, 제빵, 그림 그리기, 글쓰기, 누워있기 등등 그중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그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저녁 시간이다. 그는 대개 나의 사소한 일상을 묻는데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점심 먹고 배 아프지는 않았어?
컨디션은 어때?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다정함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그. 나는 가끔 그를 보며 장성한 자식들에게도 다정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아빠를 둔 아이는 자라 어떤 어른이 되려나? 훨씬 단단하고 둥근 어른이 되려나. 나는 그를 만나고 많이 변했다고들 하는데.


9.

무튼 이렇게 또 한해의 절반이 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이 있었는데 간만의 일상기록이라 너무 방대해서 기억에만 남겨두는게 너무 아쉽다.

하반기는 좀 더 자주 기록하며 방향과 중심을 잘 지키며 보내는 게 목표이자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