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기록/일상기록

20230314 춘천

생즙 2023. 3. 15. 00:02


눈이 시원한 나머지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준 춘천 의암호. 보통 연초나 이맘때 즈음에 1박 2일로 놀러 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는 당일치기 일정으로 춘천에 다녀왔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좋은 이유는 신경 쓰이는 온갖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주말마다 잘 먹고 쉼에도 불구하고 춘천에 가서 뭘 먹고 어디를 갈까에 대한 이야기로 벌써 들뜨고 훌훌 떠나는 느낌이었으니깐.


춘천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들기름막국수와 닭갈비를 먹는 것이었다. 식당까지 북한강을 따라 이동했는데 길가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차들과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풍경을 보니 여행 느낌이 물씬 났다.


"이런 곳까지도 방문한 사람들이 많네" 하고 중얼거리니 그는 "다음엔 여기도 와보자"라고 했다. 지나치는 풍경들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인지 햇살이 좋아서인지 남편의 한마디가 너무 다정하게 느껴져서였는지 기분이 몽글몽글하고 힐링이 됐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도착한 춘천 닭갈비집!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이곳은 그의 강력 추천 맛집인데 들기름막국수가 너무 맛있어서 내게도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기대감에 미리 검색해보지 않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너무 맛있었다.

양념이 많은 춘천닭갈비를 생각했는데 초벌 상태의 숯불닭갈비가 나왔다. 닭갈비는 엄청 좋아하는 메뉴지만 식사 후에 배앓이를 하는 날이 많아 평소에 잘 못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곳의 닭갈비는 숯불구이라 부드러워서 먹기 편했고 불향을 머금은 고기는 막국수와 먹기 좋았다. 들기름막국수는 처음이었는데 고소하고 달콤 시원한 맛이라 거의 그릇에 코를 박고 먹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정신없이 먹은 날.


식사를 마치고 잠깐 들렀던 카페! 통창이라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는 아인슈페너를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카페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햇살이 벽에 테이블에 그리고 의자에 구석구석 부서져있는 게 좋았다. 햇빛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구석진 곳인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특히 20대 커플들. 풋풋하고 귀여워 흐뭇한 표정으로 있는 나를 보고 그가 교수님 같다고 했다.


케이블카 탑승기. 춘천 케이블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한눈에 삼악산과 의암호를 볼 수 있는 코스인데 편도 15분 정도였다. 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구조물들도 보였고 날이 많이 따뜻해졌는데도 여전히 눈이 녹지 않은 산들도 보였다.  케이블카에서 노래도 흘러나와서 위에서 바라보는 호수 전경이 굉장히 운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사람이 없으면 사이좋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타나면 머쓱해하며 이동하다 전망대에도 다녀왔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간만에 셀카도 엄청 찍었는데 팅커벨처럼 나온 사진들이 많아서 한참을 웃었다.


세계주류마켓에도 들렀다. 여긴 내가 꼭 가고 싶어 한 곳이다.

널찍한 공간에 와인들이 벽에 쫙 깔려있었고 선반에도 빈 곳 없이 빼곡하게 세계 각국의 주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와인들이 있구나!  내가 평소에 마시는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와인도 있었고 나라별 가격별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었다. 나 같은 초보자들을 위한 추천 와인들도 있어서 좋았다.


박물관도 있다. 여기엔 고가의 와인들과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그도 좋아했다. 기념으로 와인도 사서 집에 돌아와 저녁에는 피자를 시켜 와인과 같이 먹었다.



모처럼 훌훌 털어내고 잘 놀고 쉬었던 날이었다. 요즘도 우리는 너무 바쁘고 치열한 평일을 보내고 있다. 집안 행사나 다른 약속들로 오랜만에 둘이 놀았다. 집에 있는 것도 행복하지만 나가서 얻는 에너지도 좋네. 리프레쉬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