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기록/일상기록

2022년 11월은

생즙 2022. 12. 5. 19:50


퍼블릭 골프장에 다녀왔다. "곧 해도 바뀌니 골프장은 내년에 가야겠지?"라고 하자 남편 왈 "그럼 당장 가야겠지?"라고 하더니 예약을 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 A에게 우리 부부의 파티원이 되어 달라고 했고 A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합류했다.

그녀는 마침 최근 차를 뽑아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다. SUV를 몰고 온 그녀의 걸 크러쉬 한 모습이 매우 믿음직스러웠다.


골프장 입장 시간은 오후 2시였다. 그래서 시작 전 식당에 모여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남편은 골프 왕 왕초보인 나와 A에게 골프장에서의 예절과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엄마새에게 훈련받는 아기새처럼 우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좀 남아 그를 따라 클럽하우스도 보고 주변 구경을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긴장했었는데 날씨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고 즐거웠다. 우리끼리 가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빼빼로 데이라고 그가 주섬주섬 먹을 걸 챙겨줬다. 먼저 회사 근처 팝업스토어에서 날 위해 챙겨 온 캄파리! 아직 먹지는 않았는데 하이볼 후기가 많은 걸 보니 맛있을 거 같다. 캄파리랑 같이 온 컵도 귀여운 게 내 스타일이네 헤헤. 그리고 빼빼로 데이의 주인공 아몬드 빼빼로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레로쉐가 그의 가방에서 나왔다.


지칠 때 먹으면 좋은 페레로쉐. 금박지를 까서 입에 쏙 넣을 때 별을 삼킨 슈퍼마리오가 된 상상을 한다. 초콜릿을 먹는 동안 머리가 잘 돌아가서다. 초코 크림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지는 먹거리 중 하나. 김밥이랑 귤만큼 좋아하는 음식 :)


그와 소금 새우구이와 콘치즈를 해 먹었다. 나는 새우 담당이었고 그는 콘치즈와 라면 담당이었다.

소금 새우는 집에서 해 먹기 좋은 난이도가 쉽고 먹기 좋은 메뉴 중 하나다. 새우를 물로 씻고 수염이랑 물총 그리고 꼬리에 있는 뿔을 뗀다. 그다음엔 이쑤시개나 젓가락으로 새우 똥을 떼주고 와인을 한 스푼 뿌린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서 굵은소금 위에 얹어서 180도의 오븐에 넣으면 끝이다.

새우가 익어가는 동안 그는 마요네즈와 모짜렐라 치즈를 꺼내 노릇노릇하게 콘치즈를 구웠고 라면을 끓였다. 원 없이 콘치즈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게다가 소금 새우와 콘치즈 그리고 라면은 단짠의 최고조를 이루어 매우 만족스러운 자체 먹방 시간을 가졌다.



반면 요리를 실패한 날도 있다. 집에 먼저 도착한 그에게 최근 인터넷으로 주문한 고기에서 잡내가 좀 나길래 와인 한 스푼을 뿌려 달라는 뜻으로 "와인에 담가줘"라고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고기가 웬 넓은 대접 속 와인에 절여져 있었다. 긴가민가 했던 그가 정말 고기를 와인에 담갔던 것이다. 게다가 고기가 담긴 술은 와인이 아닌 뱅쇼였다. 일단 구워서 먹었는데 잡내만 잡은 게 아니라 고기 맛까지 잡아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주말 아침은 여전히 일찍 일어나 함께 산책을 한다. 특히 이번 달은 빵집을 가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와 베이커리를 먹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아침을 카페에서 먹던 습관 때문에 이렇게 아침 일찍 카페에서 크로크 무슈와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여행지에 있는 카페에 온 느낌이다.


그리고 집 근처에서 숨겨진 맛집과 빵집을 발견했다. 전기장판 위에서 꼼짝을 못 하겠다고 하는 나를 억지로 데려간 가게. 쉬고 싶었던 나는 불만의 표시로 입을 대빨 내밀고 위아래 시꺼먼 츄리닝 차림으로 나왔다. 그런데 레스토랑의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너무 내 스타일인 것이다. 홀딱 반한 내 표정을 읽은 그는 예쁜 곳에 있는 나를 담아주겠다며 고맙게도 사진을 여러 장 찍어줬으나 그가 찍어준 사진 속 나는 예쁜 곳에 있는 한 마리의 포켓몬 고오스였다.


후 게다가 음식도 너무 맛있었다. 왜 이런 곳을 이제 알게 된 건지 너무 아쉬워 계산하고 나오자마자 다음 주에 먹고 싶은 메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식사 후 모처럼 호수 산책을 했다. 날이 선선해서 걸어 다니기 좋았는데 가족 단위로 혹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이 평온해졌다. 산책을 하니 커피가 당겨 우리는 카페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빵을 먹고 집에 왔다.



하루는 그가 많이 아팠다. 그의 연락을 받고 반차 쓰고 같이 병원에도 다녀왔지만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의사에게 "제발 수액이라도 놔주세요."라고 했는데 병원에서는 혈압이 너무 낮아 수액보다는 힘들더라도 뭘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뭘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을 다녀오니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병원 가기 전 직접 쑤어준 죽도 다 토해내고 온 몸도 차가웠다.

겁이 난 나는 많이 울었다.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119와 콜택시 중 뭘 불러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에 대한 고민. 한편으론 이런 고민하는 시간 때문에 그가 더 아파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런 중에 그가 잠깐 정신이 들어 내게 했던 말.

"여보 왜 울고 있어, 밥 먹어야지"


어둡고 두려운 밤이었다. 먹은 것도 없는 그의 몸이 다시 차가워질까 봐 계속 팔다리를 주무르고 체온을 체크했다. 그리고 계속 하나님께 제발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야말로 꺽꺽 울며....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새벽부터 그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미리 단호박죽을 주문했었는데 다행히 그리고 드디어 아침을 향해 가는 새벽이 되자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곧 잘 회복했고 우리는 서로를 위해 더 잘 먹고 잘 자고 더 사랑하고 아껴주자고 했고 실천하며 지내고 있다. 그는 그날 내게 밥 먹으라고 했던 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아픈 와중에 내 밥 걱정이라니 참.."이라고 했다.



그의 빠른 회복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골프였다. 같이 살살 운동하고 오자고 연습장에 갔는데 갈 때만 해도 창백했던 그의 얼굴이 운동을 하니 혈색이 돌아왔다. 다시 한번 운동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래서 그는 올해의 마지막 필드에 다녀왔다. 그리고 벌크업이 되었는지 장거리 운전을 하고 18홀을 돌고 왔는데도 꽤 쌩쌩했다. 틈틈이 내게 사진을 보내며 순간을 공유해줘서 고마웠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고기 파티를 했다. 직장생활 연차가 오를수록 식사 메뉴도 예전과는 다르게 점점 아재스러워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B가 병맥주를 숟가락으로 뻥뻥 따서 주변에 앉아있던 외국인들에게 박수세례를 받았다. 병따개를 주러 왔던 직원은 우리가 시끌벅적하게 맥주를 따는 걸 보더니 그대로 다시 돌아갔다.

고기는 소고기로 시작해서 돼지고기로 마무리했는데 가격대가 좀 있었지만 직원이 고기를 맛있게 구워줘서 만족스러웠다. 1차의 주요 대화 주제는 각자 다니는 회사의 고과에 대한 것이었다. 기준과 평가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목적은 같았다. 본인이 회사에 왜 필요한지에 대해 어필해야 하는 것. 올해는 회사의 성장과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증명은 승진과 연봉과도 직결되니깐 매년 어려운 건 다들 마찬가진 것 같았다.

2차의 주요 주제는 골프였다. 놀랍게도 대부분 골프 레슨을 받고 있었다. 이런 정도면 다음에는 실력 좀 쌓아서 다 같이 필드에 가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장 필드가 아니어도 스크린에 가도 재밌을 것 같다. 이렇게 골프에 또 동기부여가 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던 11월 마지막 주말 우리 부부는 우리의 애정하는 차 부리부리의 건강검진을 하러 나왔다. 차 관리 잘 했다고 칭찬 받아서 매우 뿌듯함을 느낀 우리는 아울렛에 가서 놀고 오후에는 온천을 하고 찜질방에서 뜨끈뜨근하게 몸을 지지고 왔다. 노곤 노곤하니 좋다. 식혜와 계란을 먹으며 오후 내내 뒹굴거리니 마음도 이완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빠르다. 갑자기 날이 추워지더니 달이 바뀌었나. 11월은 유독 빨리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