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기록/일상기록

이제야 놓아주는 22년 10월

생즙 2022. 11. 16. 23:37


바야흐로 10월이다. 단풍놀이가 하고 싶으면 그냥 나가거나 창문을 연다. 노랗고 붉은 단풍나무들이 번쩍번쩍하게 빛을 내고 있어 밤낮 상관없이 가을을 즐길 수 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선선하여 때를 가리지 않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완연한 가을을 즐기고 있다.


호박고구마를 사 와 시간 될 때마다 구워 먹고 있다. 요리의 알림을 알리는 에어프라이어의 땡 소리가 나면 일단 창문을 연다. 왜냐면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꿀이 뚝뚝 흐르는 고구마를 먹으면 꿀맛이니깐. 이렇게 먹으면 유난히 달고 맛있다. 단풍과 고구마와 함께 두 팔 벌려 가을을 물씬 맞이하고 있다.


10월은 내 생일이 낀 달이었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긴 하지만 감흥을 느끼기에는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 무덤덤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감사한 행복으로 꽉 찬 하루를 보냈다.


올해도 역시 배우자 까군은 괜찮으니 자라는 말을 만류하며 내려앉은 눈꺼풀을 이겨내더니 0시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축하해줬다. 그가 나를 위해 며칠 전부터 무엇인가 준비하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눈앞에 실체화된 모든 것들이 무척 근사했다.


꽃다발과 오렌지 자몽 케이크, 그가 직접 차려준 생일상 그리고 꽁꽁 감춰뒀던 선물까지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는 당신은 왜 이리 귀여운지!! 선물이야 말할 것도 없고 먼 곳에서 공수해온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더 몽골몽골 해졌다. 어디서 이런 사랑둥이가 남편으로 왔나. 한결같은 애정과 안정감을 주는 그는 유니콘이 맞는 것 같다.


매년 이맘때 즈음 선물을 배송하는 쿠팡 산타 일당은 올해도 역시 판다 굿즈를 잔뜩 보내줬다. 더 이상 새로운 굿즈를 찾기도 힘들 거 같은데 나의 공간을 판다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정성으로 새로운 판다들이 추가되었다. 집에만 둘 수가 없어 사무실 책상도 판다로 채워지고 있는데 지켜보던 A 대리는 내게 이 정도 퀄리티라면 내 생일을 매년 판다의 날로 기념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에 맞춰 보내주는 카톡이나 메신저에 담긴 축하 인사는 언제나 참 감사하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선물들이 며칠을 두고 배송이 되어 얼마나 황송했는지 모른다. 아, 손편지도 받았다.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라는 오쏘몰 이뮨 비타민, 수족냉증으로 덜덜 거리는 나를 위한 핫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취향을 고려한 하겐다즈 등등...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생일이었다. 🥹


생일이라고 귀중한 휴가를 내게 써준 B와 저녁을 먹었다. 미리 웨이팅해줘서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밥 먹고 카페에서 후식까지 챙겨준 덕택에 눈코 입이 호강하고 돌아왔다.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만 실상 그렇지 못한 때가 태반이다. 그럼에도 나를 예쁘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뜬금없지만 멋있다는 칭찬에는 쑥스럽기도 하고 감사한 한편으론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 힘이 났다. 몰랐는데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차서원 배우님이 헌혈하는 걸 보던 중 그동안 내가 피곤을 핑계 삼아 오랫동안 헌혈을 미뤄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남편은 이것이 미디어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표현했는데 백번 공감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나누고 실천하는 모습이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깐.


무튼 몇 년 만에 헌혈의 집에 가고 갔는데 좀 놀랄 일들이 있었다. 예전엔 페이퍼로 기입했던 설문이나 신청서들이 전부 전산화되었고 예전 나의 헌혈 이력들과 피검사 결과까지도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앱을 다운로드하고 이번이 9번째 헌혈이라는 것을 알았다.


피검사와 상담을 진행해주시던 분은 "철분이 너무 좋으시네요" 라며 다음 예약까지 잡아주셨다. 헌혈하려고 몇 주 동안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나의 건강한 하드웨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게다가 나의 헌혈 소식에 회사 팀원들도 동참하기로 해서 더 좋고 좋다.

건강을 잘 관리해서 다음에도 작은 일이지만 온기를 나누고 싶다.


몇 달 전부터 고대했던 임재범 가수님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콘서트를 최대한 잘 즐기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거의 한 달은 재범님의 노래만 주야장천 들었다. 그런데도 노래의 장르가 워낙 다양하고 좋아서 지루하지 않았고 기대감이 쌓여갔다.


그리고 콘서트 당일. 그의 라이브를 듣자마자 뭉클함과 감동이 몰려왔다.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에 너무 좋아서 울컥했고 올해 음원들이 다 너무 좋고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 가수님도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줘서 고마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고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좋은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쌓이더니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0월이 지났다. 직장에서의 나는 평범하지만 야금야금 전처럼 바쁘게 지내고 있다. 출시 데드라인이 가까워지면서 직원들 모두가 다 같이 힘을 쥐어짜 내는 중. 그만큼 진통도 엄청나다. 출시가 되면 좀 나아지려나?


뭐 그래서 어떤 날은 어깨가 너무 무겁고 어떤 날은 어깨가 으쓱하다. 어떤 날엔 칭찬에 내적 댄스를 추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엔 탈탈 털리고 돌아와 기운이 쭉 빠지기도 했다. 일이 즐겁고 보람이 느껴지는 날도 있는 반면 우울한 날도 있었다. 웃으며 지낸 날도 있었고 날을 세우는 날도 있었다. 전날엔 얼굴 붉히며 싸우고 무찔러야하는 적이었지만 다음 날엔 동료로써 서로 힘을 합쳤던 날도 여러 날이다. 매일 같은 길로 출퇴근을 하지만 어떤 날은 여유롭고 편했지만 또 다른 어떤 날은 길가의 빌런들로 인해 분노로 얼룩진 시간을 보냈다.


멀리 보면 비슷한 패턴이지만 가까이 보면 다이내믹한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그렇게 올해가 시작되고 10번째 달을 지냈고 나는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바쁘기만 했다면 별로였을 텐데 4/4분기를 지내며 올해를 슬쩍 돌아보니 나름 성장은 하고 있다. 올해 신청한 강의도 다 수강하였고 목표로 했던 시험도 잘 봤다. 기술 블로그와 노션을 보니 올해 참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물론 스스로 원했던 만큼의 퍼포먼스는 다 못 냈지만 올해까지 아직 두 달이 남았으니 아직 기회는 있다.


일주일에 4회 이상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쉴 때는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보고 책도 꽤 읽으며 마음을 채우기도 했다. 맛있는 걸 먹으며 배도 많이 채웠는데 게 철이었던 때는 홍게를 잔뜩 주문해서 집에서 쪄먹었다. 결혼 전에는 절대 먹지 않았던 게들.. 바다에서 온 먹거리를 좋아하는 그 덕분에 자꾸 맛의 지평선이 넓어지고 있다.

그럭저럭 잘 보냈던 달이었다. 11월도 맛있는 음식들 많이 먹고 좋은 것들 눈에 가득 담고 사랑하며 나도 더 무르익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