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기록/일기

잡담

생즙 2013. 8. 18. 20:35



1. 



허무함. 요즘 나는 갑자기 밀려온 허무감에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중이기 때문인건지 자꾸 쏟아져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건지. 지친건지. 무기력한건지. 제어할 수 없는 허무감때문에 마음이 너무 시린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만한건지. 물론 내가 느끼는 허무감과 공허감은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지새우신 분들의 것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것임을 안다. 알면서도 그렇다. 그리고 언젠가는 괜찮아질 혹은 무뎌질 감정이라는 것도 안다. 




2.



인간의 변덕스러움에 놀라고. 이전과 다를바 없이 같은 곳에서 그 변덕이 나타난다는 것에 놀라고.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고.  




3.



내 가장 친한 친구 C양의 결혼과 이민 소식에 통화를 하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내게 있어 선택권은 좀 더 자유롭고 불안정하게 사느냐 혹은 타이트하지만 안정된 삶을 사느냐 이 둘 뿐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자유를 찾았고, 너무 행복해하는 친구가 부러웠고 감정적인 의지를 많이 했던만큼 마음에서 큰 돌이 쑥 하고 빠져나간 느낌. 



하나님이 채워지지 않는 나를 위로해주셨으면 좋겠다. 마음이 단단하게 굳었으면 좋겠다. 내가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꾸만 밀려오는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시선을 향하고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혜없고 분별력 없는 나로부터 답을 찾으려고 하는게 너무 답답하다. 




4. 



사실 이렇게나 답답한 이유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 동안 쌓아왔던 지식들을 뒤로 하고. 전공자로써 대학 4년간의 과정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접근.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과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나에 대한 평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려운 공부. 그리고 그 와중에 혹시나 생길 예외에 대비해야 하는 제2외국어 공부.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도 당장 너무나도 불확실한 내 미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생기는 기대감과 흥분감도 크다. 새로운 시스템과 새로운 언어. 계속되는 공부. 새로운 사람들. 사실 '개발'이라는 분야는 어렵고 외로운 분야지만. 이를 위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좋은 회사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유리말대로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다. 정말 모든 것들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하지만. 때가 되면 그 길이 보일터이니. 




5. 



까치랑 사귄지도 벌써 200일이다. 까치랑 같이 애견카페에 종종 간다. 

나는 까치의 배려와 섬세함 그리고 고요함을 닮고 싶다. 



한 번은 길에서 까치와 작은 문제로 투덜거리면서 가는데 웬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파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성을 내고 있다가 홀린듯이 길에 쭈구려 앉아서 강아지들을 안아보고 만져보고 무엇때문에 투덜거렸는지에 대해 기억하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후 강아지를 분양하고 싶어서 끙끙대고 있는데 까치가 고맙게도 애견카페에 데려가줬다. 



 



까치는 내가 소심해서 강아지한테 적극적으로 못 다가가는 걸 안다. 그래서 나한테 강아지를 데려와서 잘 쓰다듬을 수 있게 강아지 얼굴도 내 쪽으로 해주고. 까치의 배려로 틈틈이 강아지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시간을 돌려 다시 공부를 해서 동물원 조련사가 되고 싶다는 내게 까치는. 그 또한 내가 생각하는만큼 만만한 일도 아닐 것이며 TO 또한 별로 없다며 가장 나한테 잘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며 독려해줬다.  



하지만 까치가 내게 너무 좋고 좋은 남자친구지만.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6.



언제든 나를 불렀을 때 당장 나가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매일매일 준비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엄마는 산 증인이다. 나이를 떠나서 더위를 떠나서 모든 걸 다 떠나서 누군가 엄마의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당장 '네! 여기 있어요!'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엄마가 기울이는 노력은 정말 감히 내가 말로 할 수 없다. 



결국 '기회'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되지 못했을 때에 느끼는 나의 무력감은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크니. 이제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공부를 해야지. 

결국은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