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Peru 현지생활

잡담

생즙 2012. 10. 3. 06:07

1.





   




화분을 샀다. 이름은 "초록"이라고 붙여줬다.



식물도 관심 갖고 말 걸어주면 좋아한다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안녕 초록아 올라 께딸?!" 꼬박꼬박 인사도하고

온실안의 화초가 되게하지말자! 라는 맘으로 자외선 좀 쐬라고 늘 창가에다가 바람도 쐬주고 물도 주는데 자꾸 잎사귀가 시들시들해서 속상해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진드기들이 있었다. 



진드기들을 보고 화가 나서 면봉으로 진드기들을 다 걷어내고 모조리 사형시켰다. 





2.






      

   




수요일엔 애들때문에 그리고 학교 동료들땜에 마음이 좀 별로였었다. 답답해서 학교 위층에 올라갔더니 동네 전경이 확 보인다. 

해도 안 뜨고, 개는 많고, 자꾸 피곤하고 등등 "아 이게 뭐야!!" 혼자 이러면서 올라갔는데 지금 보고 있는 사방에 보이는 이 갈색전경이 회색전경이 평생 그리울꺼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찻길에서 짝짓기 하느라 길 가로막는 저 8마리의 개 무리때무에 차들이 빵빵 거리는 통에 뜬금없이 웃겨서 소리내서 웃었다. 





3.



 


   




꼬맹이들 덕택에 오늘은 난 진짜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저 멀리서 Marcos가 부른다. 가보니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던 컵에다가 한 컵 가득 따라줬다. 자리가 어수선해서 보니 다른 꼬맹이가 케이크를 담아서 날 준다고 책상 위에 올려놨다. 팔찌를 챙겨주는 꼬맹이. 땅바닥만 쳐다보면서 걷는 내게 달려와서 폭 안기는 꼬맹이들. 



다시는 애들하곤 일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정 들여놓고 애기들 두고 어떻게 가야하나 싶다. 






4.



영화도 봤고 연극을 봤다. 

페루에 오고나서 이전에도 종종 연극은 찾아 봤지만 70%는 이해불가한 것 같아서 이번엔 어린이 연극을 봤다. 

우리나라와 정말 다른건. 어린이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스킨쉽이 많고 키스신도 진짜라는거. 혼자 내심 충격. 






 

만화를 만드는 사람,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을 하는 사람, 동화작가.

어린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뭔갈 창조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날.  





5.




   




올 것 같지 않던 2년의 끝이 약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 제일 친했던 성은이가 가고 나서, 타이밍이 딱 맞게도 바로 홍군이 와서 1년정도 친하게 지내다, 홍이 가고 나니 또 새롭게도 깡 언니와 엄청 친해졌다.  똑같은 길, 똑같은 가게. 간 사람은 없어도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떠나온 한국도 그랬겠지. 한국에서 내 존재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질텐데말이다. 






6



내가 선택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거지만 요며칠 한국에 있는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난다. 꿈을 꿔도 늘 그리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국에서 가장 친한 K양 동생이 나처럼 단원지원을 해서 스리랑카로 간다고 한다.

행복하라고. 책임감으로 있지 말고. 이 길이 아니면 중도포기해도 되니 즐겁게 지내라고 말했다. 





7



얼마전에 또 지진이 났다. 잠깐이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수갱이에게 전화를 했다. 가벼운 지진이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지진을 겪고나면 심장이 쿵쿵 뛴다. 










페루에 오고, 이전에 산을 타다, 눈보라 산사태때문에 산에서 짧은 시간 조난을 당한 적이 있다. 건너편 산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아무생각 없이 "와, 저거 멋있네?" 라고 생각하고 절벽에 붙어있다가 눈보라가 몰아쳐. 돌아가는 길목이 끊겼다. 함께 있던 그룹 사람들은 울었고. 에메랄드 빛을 뽐내던 호수는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오니, 먼저 도착했던 그룹 사람이 날 보고 죽은줄 알았다며 엉엉 울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날의 고비덕택에 산다는게, 따뜻한 차를 마신다는게, 허기를 느낀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줄 알았다. 

그러니, 자연 앞에서 우주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디 작은 존재인가. 

가끔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 날 아프게 하지만. 이 또한 자연 앞에는 작은 것이니. 





8.




그래도 페루에 오고 나서 '자아'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었다. 한국에 있을 땐 다른 사람들 눈 의식에 나시티도. 혹시나 멋 부린다는 핀잔있을까 썬글라스를 쓰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이 곳은 앞이 안 보이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뚱뚱한 사람들도,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돌아다니는 페루.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페루에서 배운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을 지극히 의식하지 말아야겠다. 




      




얼마 전에 깡 언니와 이야기 하다가 언니가 내게 "페루에 와서 얻은 게 뭐니?" 라고 물어봤다. 글쎄요. 라고 하다가 사실은 얻은것보다 어쩌면 잃은게 더 많은 거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치만 다시 2년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분명히 결과를 알아도 일단은 하고 싶은 일을 했을꺼라고 말하자, 언니도 "뭐야~잃은것투성이네"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원해서. 꿈을 쫓아서 왔으면서, 휴일이라고 파업이라고 움직이지 않는 버스들, 열리지 않는 학교를 보며 내심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 내가 너무 간사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가기 전에 해야할 일이 많은데 맘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한국에 있었어도 불평이나 하고 있겠지. 정말 난 "해도 지랄, 안해도 지랄". 흐흐.





리쌍 노래처럼 사는 건  기쁜거 즐거운 거 돌고 돌면서 사는거니깐. 





9.



M:


탑 밖에는 거대한 세상이 존재한다.

끝 없는 하늘이 펼쳐져 있고 수 많은 별들이 어둠을 밝히지. 

탑보다 수천, 수억배는 거대하고 자유로운 곳. 그런 곳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B:


잘 모르겠어요. 

별도 독좌도 하늘도 바깥 세상도 필요없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제게 소중한 사람을 해치려고 한다면 전 싸울겁니다. 



-네이버 웹툰 신의 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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