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Peru 현지생활

주말근황

생즙 2012. 9. 9. 17:36

1.






남미사람들이 무척 밝고 역동적이라고 느낄 때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리듬에, 그 흐름에 온 몸을 맡긴다는거다. 정말 영화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간혹 버스에서 이런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은 정말 일제히 발을 쿵쿵 거리거나 손가락이나 고개를 까닥인다. 주말에는 공원에 모여 나이드신 노년층의 분들이 노래에 맞추어 자유롭게 춤을 추신다. 흰 머리가 지긋하셔도 너나할꺼없이 손을 맞잡으시고 즐겁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춤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보면,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신선하고 아름다워보인다는거. 





하지만, 음악이 나오면 나도 어느새 몸이 촐싹촐싹 거리는걸보면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일주일동안 열심히 살았던만큼 휴식기간이 얼마나 달고 달았는지. 짧은 휴식의 달콤함은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에 비례하는게 분명한 것 같다. 


   







얼마전에 독일인 안네가 컴퓨터 사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가게에 가서 예전에 물건들을 샀던 기억을 되살려서 안네의 새 컴퓨터를 구입했다. 가격도 좀 깎고, AS기간도 늘리고 했더니만 얼마나 감동을 하던지 내게 점심을 쏘겠다고 해서 안네와 함께 메뉴집에 갔다. 안네와 내가 잘 맞는 이유는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우리는 아직 어린 편이고, 돈이라는 물리적인 요인에 많이 한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페루 문화에 대해서 되도록 열린 입장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외국인들은 내가 메뉴집에 간다고 하면 ㅡ_ㅡ 이런 표정을 지으며 "너 진짜 페루에 잘 적응하면서 살고 있구나?" 라고 말하는데 안네랑은 그런거 없이 페루에 사는 게 자연스러워서 좋다. 





오랜만에, 러시아 여자 마리아와 함께 식사를 하고, 안네네 집에 가서 안네와, 나, 그리고 페루친구 까르멘이랑 셋이서 와인을 마시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까르멘은 자꾸 북한에 여행을 가겠다며 북한과 한국정치상황에 대해서 물어본다. 한국이 왜 분단국가가 되었고 통일을 못하고 있는지....등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안네 남자친구 왈따 등장. 다시 왈따와 함께 왈따 친구들 집에서 페루와 베네수엘라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귀엽게도 모두들 한 손에는 와인잔이나 맥주병을 들고 목터져라 응원하고 있다. 오늘 새로 안 사실인데 페루가 골인을 하는데 너무 흥분해서 페루 사람 두 명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못지 않게 페루 사람들의 축구사랑은 대단하다. 축구를 보다가 지쳐서 먼저 나왔는데 정말 길에 신기할정도로 차가 없었다.  






한국에서 남미로 건너올 확률과 남미에서 독일 사람을 만나 그 남자친구와 스페인으로 대화할 확률.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페루만세를 외치며 페루 축구를 응원할 확률은? 엄청난 행운이지. 정말 즐겁고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3.





   







리마에 봄이 오고 있다. 잠깐동안이지만 해가 떴다. 너무 신나서 당장 빨래부터 돌리고 창가에 앉아서 햇빛도 쐬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신고 무작정 홀로 쎈트로에 갔다. 리마가 정말 발전했구나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쎈트로에 갈 때마다 타는 저 지하철같은 버스. Metro Politano라고도 하며 저 버스 전용도로가 따로 있어서 지하철처럼 정시에 도착하고 절대 버스가 막히는 그런 일이 없다. 출퇴근 시간에 사람이 많다는게 함정이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햇빛 쬐면서 걸어다니니 기분이 좋았다. 정말 봄이 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4. 





며칠전 에두에게 쪽지가 왔다. 내용은 곧 싼도르의 생일이니 모여서 깜짝파티를 해주자. 작년 9월은 내가 프로젝트 진행중이기도 했고 싼도르는 학교생활에 치여서 생일때 구두로만 생일축하해 하고 말았는데, 나보다 센스가 백만배 넘쳐흐르는 에두 덕택에 하비에르와 나, 그리고 깡양 넷이서 파티를 진행하기로 일단 약속! 







      

      







이제 만 25살이 된 싼도르. 다같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싼도르 몰래 케이크 사니라고 하비에르랑 둘이서 잠깐 빠져나왔다가 싼도르가 삐지는 바람에 길거리에서 다같이 케이크를 들고 생일축하송을 불렀다. 리마 시민들의 축하를 한몸에 가득 안고, 센트로에서 이들 삼총사가 자주 가는 바에 가서 케이크와 와인을 마셨다. 







마지막 사진은 술집 내부 풍경인데- 또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끌시끌한데 저 앞에서 웬 할아버지가 끊임없이 피아노를 치고 계신다. 할아버지께 팁으로 1솔을 드리고 Let it be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노래를 다 듣고 각자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축복(?) 비슷한 걸 했다. 나는 싼도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오늘 이렇게 다같이 있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했고 싼도르는 내게 Mejor Amiga(절친)이라고 칭해줬다. 








5. 





      





낮에 보면 온통 새하얀색인 San Martín 광장. 구걸하는 사람들도 많고, 밤에는 쎈트로 걸어다니면 안된다고 배웠는데...싶어서 나 좀 무서운데 빨리 돌아가면 안되겠냐고 징징 거리는 내게. 에두와 싼도르와 하비에르는 지극히 안전한곳이니 안심하고 걸으라고 했다...-_- 그러면서 또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말한다. "우리들은 강한 남자들이야."



여담이지만 깡 언니가 오고 나서 리마생활이 더 재밌어졌다. 다만 아쉬운 건. 모두가 내가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데에 대한 아쉬움을 자꾸만 곱씹는다는거다. 소중한 시간인만큼 즐겁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돌아가야지. 요즘들어서 특히나 언어라는게 문화를 이해하고 대화를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도구인지 곱씹어보곤한다. 






6. 



델레시험준비를 시작했다. 오전엔 근처 카페에 가서 밀린 숙제에 이전 기출문제를 쭉 다시 풀어봤다. 한 번 떨어진만큼 사실 쳐다보기도 싫은데 문법 파트에서 과락이 났다는 건 어쨌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의미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 그저 열심히 해야지. 고맙게도 싼도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도와주겠다고 한다. 아무리 친구라해도 공짜로 엄청 바쁜 친구를 뺏을 수는 없다고 했더니만- 중요한건 아직 많이 부족한 내 스페인어 실력을 채우는게 우선이라며 가르침에 있어 자기는 참 기쁘기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참 고마운 싼도르. 결국은 그럼 도와주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내가 밥이든 차든 하나는 대접하겠다고했다.  






7.



집에서 룻 아줌마와 집주인 할머니 세뇨라 리다와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종교 이야기가 나왔다. 페루는 카톨릭 국가인데 신기하게도 룻 아줌마는 교회를 다니신다. 아줌마한테 나는 내가 기쁘고 즐겁게 열심히 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줌마는 내게 참 옳은 교육을 받으며 잘 자랐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줌마는 신께서 내 상황을 통해서 혹은 사람을 통해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기울이고 생각하며 살라고 하셨다. 





꽤나 길었던 겨울이 끝나간다. 이제 해가 뜨는 빈도수가 점점 늘겠지. 

정말이지 나는 '봄'이라는 계절이 참 좋다. 오늘만큼만이라도 내일도 해가 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