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Peru 현지생활

근황

생즙 2012. 7. 26. 11:07


오랜만에 한 숨 돌린다.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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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기관파견되고 나서, 수업을 하다가 꼬맹이들이 싸움이 나서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견초반에는 꼬맹이들이랑 말도 하나도 안 통하는데다가 지들끼리 싸우다가 코피가 터져서 정말 황당했는데. 역사적인 오늘 싸움을 말렸다. 이예! 



Cuando estoy en el colegio, a veces los niños luchan con su amigo en la clase. Cuando trabajé primera vez, como no hablé bien español, no pude controlarlos. Finalmente, los controlé hoy. ja ja ja. 




      

      




출근을 했는데 이번엔 컴퓨터실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열쇠를 갖고 식사를 하러 가버렸다. 이제나저제나올까 하며 30분을 바깥에서 기다렸다. 







처음에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학교에 가면 학교문이 굳게 닫혀있다는거였다. 기관측은 분명 내가 출근하는 시간을 분명히 알고 있고, 꼬맹이들은 바깥에서 바글바글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전을 꺼내서 쇠문을 한참 두드려야 룻 아줌마가 바깥에 나오고, 힘들게 학교에 들어가도 컴퓨터실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5분 정도를 따로 소비해야한다. 그래서 늘 미리 수업준비를 하려고 일찍 기관에 출근해도 제시간에 수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변한것 중 하나는, 굳게 닫힌 문에 좀 적응이 되었다고 해야하나? 








Cuando llegué al colegio, no había el señor que tenía llave del aula, porque se fue para almorzar. Esperé durante media hora fuera con los niños. Cuando llegué a Perú primera vez, no me había acostumbrado una cosa. Por ejemplo, cuando llegué al colegio, siempre la puerta estuvo cerrado, entonces tenía que tocar la puerta con mi moneda muchas veces hasta cuando Señora Luz abría la puerta. Después, siempre tengo que buscar una persona que tenga llave del aula de computación durante 5 minutos. Por eso, aunque llegaba temprano, no podía empezar de mi clase en el tiempo. 






Pero. ahora me he acostumbrado e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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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




      







조금있으면 페루의 독립기념일이라 학교가 또 들썩들썩하다. 정말 파티를 기가막히게 좋아하는 나라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꼬맹이들이 모처럼 학교 근처에 오랫동안 남아있고, 그만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자꾸 마음이 먹먹해질때가 많다. 동정심인지, 진심인지, 혹은 그냥 오지랍인지 잘 모르겠다. 







El día de 28 de Julio es el día de independencia de Perú, así que todas las personas en que están en el colegio están muy ocupados. A los peruanos les gustan la fiesta muchísimo. Hoy por hoy, los profesores y los niños están en el instituto hasta por la noche, por eso a veces conversamos antes de regresar a la casa. 







수업을 끝나고 루이스와 씨오마라가 와서 한국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내 형제관계를 물어본다. 남동생이 하나 있다는 말을 듣더니- 자기 형제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역시나 복잡하다. "저는 진짜 엄마랑 살고있구요. 저희 형은 새아빠 아들이구요. 저는 삐우라에서 왔구요. 아. 저희 진짜 아빠는 삐우라에 있구요." 뭐 이런 식으로. 내게는 당연하지 않은 이런 사실들인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게 맘이 좀 먹먹해져서 물어봤다. "진짜아빠와 따로 있는게, 너를 괴롭히지는 않니? 힘들지 않아?"

이제 만8살인 꼬맹이들이 동시에 말한다. "아뇨? 괴롭히지않아요. 단지 같이 살지 못해서 슬프죠. 엄마는 아빠를 신고해서 우리는 같이 못 살아요." 그리고 이어서 씨오마라가 말한다. "어? 나돈데." 








나도 가끔은 무섭게 느껴지는 버스를 꼬맹이들이 혼자서 척척 잘 탄다. 꼬맹이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어둑어둑해지면 "부모님이 기다리시니깐 얼른 가자." 이러면, 머리를 도리도리 젓는다. "우리 엄마 일하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빈 집에 들어가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다 자라고 나서는 가끔 엄마아빠가 나간 사이에 집에 오고는 했지만, 어린 시절을 통틀어 지금 현재까지도 빈집에 혼자 있는건 상상하기가 어렵고, 상상만해도 좀 외로워진다. 

내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한 꼬맹이들한테 느끼는 먹먹함이 뭔지 모르겠다. 이 또한 문화니 존중해야할것인지. 

어떤것이 옳고 그른건지 정답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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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회



      







기관장에게 "당신은 참 우리 아빠같다." 라고 말한이후로, 기관장이 정말 날 딸처럼 보살펴준다. 난 참 복도 많지.

선생님들끼리 모이는 자리, 혹은 학교에 행사가 있다 하면 오전출근이 아닌 날 위해 문자에 전화에, 학교에서 한 번더 확인도 시켜준다. 황송하게도 차로 이동하는 자리에서는 무조건 내가 일빠다. 이제는 학교에서 날 제일 아는 사람은 룻 아줌마와 기관장인것 같다. 민망해서 웃는지 황송해서 웃는지 피곤해서 웃는지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하하. 









이번주 화요일에는 그동안 함께했던 프란시스코가 직장을 내려놓고 새로운 일을 찾는다고 학교에 찾아왔다. 그래서 모두 모여서 같이 V.Salvador에 가서 닭요리를 먹었다. 각자 잉카콜라 한 병씩 들고 Salud을 외치고 건배를 했고, 프란시스코를 비롯해 기관장, 델리아 등.. 각자 돌아가면서 앞길을 축복해주는 말을 한 마디씩 했다. 나는 "우리 또봐요." 하고선 그냥 악수만했다. 









아, 재밌는 일이 있었다. 




밥을 먹는데 옆에 앉은 다니엘 핸드폰이 막 울린다. 본의 아니게 통화내용을 듣고 말았다. 


"삼성맞죠? 제 친구 한국인 쎄뇨리따 조가 삼성을 완전 추천해서 TV를 샀는데, 화면에 흠이 있더라구요? 

 어쩔껍니까. 이거 교환해달라고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코이*에서 보낸 한국인 쎄뇨리따 조가 삼성을 추천했는데. 

 이럴껍니까?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고. 

삼성에 제 이름 아무리 대도 그쪽에서는 저를 모른다니깐요? ㅠㅠㅋㅋㅋㅋㅋ 

결국엔 다니엘이 이겼다. 교환해주기로 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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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기관을 출근하는 길은 늘 흥미진진하다. 보통 버스비는 1솔, 우리 돈으로 치면 약 400원이다. 버스에만 있으면 꼭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와서 사는 기분이다. 영화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출근하는 동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는데 저 좁아터진 버스에만 타면 잠이 쏟아져 죽겠다. 






너덜너덜한 버스를 타고 바닥이 이상해서 버스 바닥을 보니 나무 판자로 얼기설기막아놨다. 종종 창문 없는 버스도 많다. 

옆 버스 백밀러 박아버리고 그냥 쌩쌩 달려서 추격하는 뒷버스 피해서 도망가기도 하고. 

한 번은 사람들이 깡통같은걸 하도 던져대서 창문이 깨진적도있다. 아무튼 신기한 경험 참 많이한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알쏭달쏭한 회색빛이고. 길거리에는 정말 벌레가 따라붙는 거지아저씨들이 깡통들을 허리춤에 달고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도한다. 가끔 운 좋지 않은 날에는 버스에 잽싸게 타는 날치기들도 보고. 








저렇게 탁 트인 곳에 이발소라고 남자들 머리 깎고 있거나, 여자들 파마한다고 머리 말고 있는것도 신기하다. 

벽에 지저분하게 낙서있는것도 신기하고. 어딜가든 경찰들이 쫙 깔려있는것도 신기하다. 








요즘엔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들, 차장 아저씨들과도 얼굴을 다 텄다. 리마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워낙 시골스러운 곳에서 일을 하는 특권이자 행운이다. 아직도 자꾸 내 이름 기억못하고 치니따라고 부르는게 함정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 말 시키면, 이제는 알아서 차단해주고 앞으로 오라고 한다.  이제 곧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이메일주소 꼭 주고 가라고 당장 내려야하는 날 잡고 신신당부하는 귀여운 페루 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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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페루의 독립기념일을 기념하여, 각 반에선 음식이나 공연 중 하나를 준비해야했다. 우리 반은 음식을 준비하기로 결정. 

다른 반은, 음식을 그냥 사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역시 단합잘되는 우리반은 천하무적이다. 

우리가 준비한 요리는 옥수수를 삶아서 이쑤시개에 꼽고, 아히소스를 만들었다. 맨 마지막 사진은 우리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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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아마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일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타국에 와서 살고있는 외국인들끼리 페루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며 모여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예전에 한국에서 swell을 할 때, 클린턴이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워낙 수가 적어서 서로 건너건너 대충은 알게 된다고 했었는데 내가 외국인의 신분으로 페루에 있다보니 이게 무슨 뜻인지 알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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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 데릭아저씨 







요즘엔 오전에 학원에서 스페인어 수업이 끝나면, 오후 수업이 좀 느린 날은 안네와 느릿느릿 걸어가고, 시간이 좀 빡쎄다 싶은 날은 데릭 아저씨와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아저씨는 나를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는데, 일요일에는 학원 사람들과 함께 데릭 아저씨네 집에 갔다. 







      






세계 통틀어 엄마들은 강하다. 

수업을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 사연을 많이 이야기하곤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제일 큰 것 같다. 

가끔은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고, 





여러모로 다행이다. 나는 학원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