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기록/일기

20120504

생즙 2012. 5. 4. 16:04


1.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게다가 일을 한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변수가 많기 때문에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하며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지만 그 변수가 가끔은 나를 아프게 할 때도 있고, 내가 하는 일들에는 반드시 책임감이 요구된다는게. 한국에서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 언제든 기댈수 있었지만 내 선택으로 페루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몹시 고독할 때가 있다. 




   



평소처럼 수업을 준비를 하고, 보고서들을 작성하고, 출근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시간을 적는 아저씨와 노가리를 즐기는것까지 정말 평소처럼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나서 조금 힘들었다. 잃어버린 물건들을 신고하면서 마주했던 트러블들, 중요한 여권 재발급과 카드정지에서부터 사람에 대한 배신감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는 자괴감때문에 늘 화가 난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 몇주간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저번주에는 학생 한 명을 잡고 "내 수업엔 더이상 들어오지 말것."이라고 화를 버럭 내버리고선 집으로 보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며칠이 지나서 찾아왔다. 내내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보고 잘못했다며 나를 꼭 껴안고 용서해달라고 엉엉 울었다. "아 이게 아닌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과를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시간 가슴 졸이고 있었을까. 너무 미안했다. 성경말씀이 맞다. 화와 분은 스스로에게도 다른이에게도 상처만 남길뿐이다. 나는 좀 지혜로워지고싶다. 







2. 


오랫동안 미뤄두고 미뤄뒀던 프로젝트 정산을 마무리했다. 정말 거의 일주일간 정산과 결과보고서, 기증문서 만드는데에만 all in 했다. 사무실에 보고서들과 영수증들을 제출했으니.. 이제 카드에서 남은 돈 인출만 하고, 소매치기와 함께 잃어버린 영수증들만 다시 받아내면 된다. 빨리 이 모든 것으로부터 홀가분해지고싶다. 1년이 지나고 나면 이 모든 일이 지금보다는 가볍게 느껴질까? 뭐든 미루는 것은 좋지 못하다.  








3. 


주말에 바다에 갔다가 공개 프로포즈를 하는 페루 커플을 보았다. 친구들이 등 뒤에다가 글자를 들고기다리고 있다가 고백하는 커플들을 위해 한 명씩 샥샥 몸을 돌렸다. 밤이고 워낙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뭐라고 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난 이런 해피엔딩이 좋다. 구경하는 이들도 당사자들도 친구들도 모두 행복해해서 너무 좋았다. 



   






4. 


그런데, 변하지 않고 꾸준히 그것도 날! 자꾸 지치는 것 중 하나는 기관사람들의 시간약속개념이다. 한국에서 시간개념없이 살았던 벌을 정말 속이 욱신욱신거릴정도로 엄청 받고있다ㅠ 엉엉. 나는 오늘 선생님들이 오기만을 혼자서 빈 교실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이럴꺼면 내가 처음에 이야기한데로 1시간 늦춰서 수업을 시작하든가...' 하는 맘이 들어서 속상할뻔했는데.  



   



수업을 하고 나면 그 마음이 싹 사라진다. 내가 물건들을 도둑맞고나서 기가 확 죽은걸 알고 매일매일 나를 꼭 안아주는 마리쏠 선생님과 페루사람들을 대표해서 늘 미안하다고 말하는 다니엘과 M선생님. "괜찮아. 잘 될꺼야." 라는 말이 정말 그 말과 포옹이 요즘 나한텐 치료제다. 흐흐. 




5.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내버려두면 축제가 될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날려올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릴케[인생]-



간지러운 표현이기도 하지만 요즘 난 광야에 덩그러니 던져진 기분이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생각보다 어렵다. 오랜기간동안 나는 그 분께 늘 자비를 구하고 구하고 내가 넘어지고 깨져도 내 길이 당신안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해왔는데 해외에 나오니 오히려 나는, 내 모습엔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간사하게도, 나는 신을 믿으니 이 속에서도 분명 내게 무언가를 말씀하고 계시겠지라고 믿는다. 내가 이 속에서무언가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시는걸까. 아니면 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건지. 나는 좋은 향기 좋은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 약하고 약한 나. 진짜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나 나로부터 등 돌리시는 않을까. 




6. 



이런 고민이 들어서 어제는 현지교회에서 있는 수요예배를 갔다. 그냥 뭔가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싶었던거였는데 삼삼오오 짝을 모아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있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머나먼나라 한국에서 여기를 도우러 왔는데 이 곳 사람들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니. 그냥 마냥 놀래서 멍 때리고 있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스페인어로 기도를 했다 -_- 

잠깐이면 끝나겠거니 했는데 1시간이 지나고 1시간 30분이 지나도 끝이 나지 않았다. 

너무 울렁거려서 결국엔 도중에 집에 왔다. 



먼 페루에서 북한과 쿠바를 위해 기도한다. 여러감정들이교차했다. 





7.


그러게. 하나님은 악을 악으로 갚으라고. 싫어하는 사람을 미워하라고. 불쌍한 이를 포기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원수들을 생각하며 부득부득 이를 갈고 그저 복수심에 화에 젖어 살라고 하신적이 없다. 

그저 내 이기심, 내 답답함게 갇혀서 나는 오랫동안 또다시 그분을 외면하고 살았구나.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베전 3:8,9-





그저 눈앞의 이익, 눈앞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오랫동안 귀기울이지 않았다. 

지혜롭게 살고싶다. 단련되어져가는 하나의 성장통이었으면 좋겠다. 

남은 시간동안, 내게 주어진 사람들도 환경들도 사랑해야지. 이제는 정말! 초심을 되찾을때가 온 것 같다. 




더이상 기죽어서 축 쳐져있지 말아야지. 나야말로 정말 화이팅이다 !!! 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