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Peru 현지생활

파견 9개월차 근황, 내가 만난 페루 사람들.

생즙 2011. 9. 16. 20:36


1. 룻 아줌마의 생일


기관에서 가장 친한 학교 청소부이자 수위아줌마인 룻의 생일이었다. 나는 룻을 참 좋아해서 수업이 끝나도 아줌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한다.ㅋ 어제도 기관 수업이 끝나고 나서 청소하는 룻 아줌마 옆에서 집에도 안 가고 졸졸 따라다니는데, 아줌마가 "오늘이 내 생일이야." 라고 갑자기 알려주시는 바람에 하루가 지난 오늘 급작스럽게 파티를 준비했다. 하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생일을 알리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알고보니 디렉토르가 룻의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휴가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하고도 사별을 하고, 매일 어린 아들을 보듬고 학교에 나와서, 정전이 되엇을때도 무서워 벌벌 떠는 룻 아줌마.




 



내가 일 하는 동네는 살고 있는 곳과는 많이 달라서 맛있는 빵조차도 먹기가 힘들다. 가끔 집 앞에 있는 빵 집에서 빵들을 잔뜩 사가면 너무나 맛있다며 눈이 휘둥그래질정도다. 룻 아줌마를 위해서 요리도 해 주고 싶었는데, 아줌마는 가스레인지나 뭔가 음식을 따뜻하게 데울만한 기구가 아무것도 앖다고 해서, 집 앞에서 맛있는 사과파이와 초콜렛, 한국에서 가져온 열쇠고리와 카드를 써서 세팅을 하고 아줌마를 불러서 노래를 불러줬더니 룻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룻 아줌마는 정말 똑똑하다. 디렉토르가 아줌마가 컴퓨터실에 들어오는것조차도 금지하고 있어서 디렉토르 몰래 깜깜한 밤에 룻 아줌마와 둘이서 공부를 하곤 하는데, 웬만한 선생님들보다 혹은 학생들보다도 빠르다. 기계에 대한 감이 있다는거다. 분명 나이는 40대 초반인데 첫째 아들이 나와 동갑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는 말았는데 아들에 얽힌 사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살아오면서 마음도 몸도 많이 상하고 다쳤던 룻 이야기를 듣다가 그만 펑펑 울었다. 이번에도 룻은 나를 다독거리며, 세상엔 좋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도 많이 있기에 항상 내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조심하고 행복하라고 해줬다.



고마운 룻 아줌마. 학교 공부도 마저 못 끝내고 리마에 와서 온갖 험한 일을 다 겪은.. 지금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 분명 다른 나라들보다는 경제적인 수준이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나온 사람들은 행복한 기억들보다는 가슴에 큰 멍이 든 사람들 투성이다. 룻 아줌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2. 델리아와 시장 탐방.



기관에서 가장 친한 동료 델리아. 요즘 델리아는 자기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나를 기다려주곤 한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근처에 있는 시장에 갔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갔던 델리아는 이 날도 카메라를 들이내미니 "짠" 하고 포즈를 취했다. 언제나 활발하고 쾌활한 델리아와 얼마 전에 학교가 끝나고 계단에 걸터 앉아서 "엄마"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델리아는 교실에도 자기 방에도 지갑에도 자기 엄마 사진은 잔뜩 붙여놨다. 항상 그녀의 엄마를 "천사"라고 표현하며 지금도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하던 델리아. 알고 보니 델리아의 어머니는 내가 오기 직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힘들고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울었고, 그 타이밍에 남자친구마저 떠나가서 델리아는 내게 "신이 없었다면 자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다.





 



그렇기때문에 늘 살아있는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델리아. 그리고 늘 날 위해서 기도한다는 델리아. 종종 같이 밥을 먹을때 강제로 다 먹으라고 "니 음식 다 끝장내." 라고 으름장 놓는 것만 빼면 참 좋을텐데.ㅋ (물론, 산더미 같은 음식에 곤란해 하면 룻 아줌마가 사람들 안 보이는 사이에 그릇을 바꿔주신다.히히) 


어쨌든 델리아와 시장에 가서 돌아다니다가 한글이 쓰여진 스티커를 봤다. 신기한 곡물들도 봤고 시장이라는 장소는 장소만으로도, 그 이름만으로도 활기차서 참 좋다. 다음엔 이 곳에서 같이 메뉴음식을 먹자고 다짐하면서 같이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이런 순간순간을 담아야한다며 델리아는 내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날 찍어댔다.ㅋㅋ 사실, 부족함 투성이인 나한테 늘 고맙다고 말하는 델리아. 내가 타지에 있는 막내동생 같아서 자꾸 눈에 밟힌다며 심심할까봐 핸드폰만 충전하고나면 늘 전화해주는 델리아. 진짜 고마운 일이다.






3. 6학년들과의 마지막 수업.


매주 목요일을 기다리는 이유는 고학년 아이들이 오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오는 시기다. 하지만 역시 애들은 애들이라서 생각도 많고, 싸움도 많고, 때로는 장난 전화를 하기도 하고, 이메일로 행운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수업을 하는데 남자애들이 몰려와서 단체로 뭐라고 하는데 말도 빠르고 워낙 중구난방으로 들려와서 "초콜렛 묻힌 과자" 라는 말밖에 안 들리길래, 장난으로 "아, 나한테 초콜렛 주고 싶다고?" 라고 했더니만, "네!! 맞아요" 라고 하더니 내게 주머니에 초콜렛을 꽂아주고 집에 갔다. 축구를 하다가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나를 위해 저 멀리서부터 "MISS YUNA" 를 외치며 달려오던 아이들, 출근하는 나를 위해 아침조회중에도 열렬하게 박수를 치곤 하던 아이들.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방학이 오는지라 아마도 마지막이 될 수업이기에 오늘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준비해온 과자들을 나눠줬는데 왠지 가슴이 찡했다. 10년이 지났을 때 혹은 20년이 지났을 때 시간이 많이 흘러서도 애들한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4. 싼도르와 가정부 아주머니 룻.



시간이 좀 지났지만 얼마전에 싼도르와 같이 센트로 리마에 가서 필요한 책을 구입했다. 페루에 처음 와서 학원 선생님이었던 싼도르는 지금도 나의 가장 좋은 선생님이자 좋은 친구다. 얼마 전에는 싼도르의 생일이었다. 싼도르는 워낙 칠칠맞아서 핸드폰을 자주 일어버리는데 이번에도 역시 핸드폰을 잃어버린덕에 메일로만 축하 인사를 보냈더니만 감동에 감동을 받은 싼도르는 어디서 배워왔는지 한국말로 답장을 보내왔다.ㅋ 싼도르는 고맙게도 늘 우리는 친구라며, 가끔은 나를 이해 못하겠다고 툴툴거리면서도, 가장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손 벌려서 도와준다. 고마운 싼도르. 항상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있는 싼도르를 놀렸더니, 원래 사랑은 동시에 하는 건 힘든거라며 그래서 세상엔 짝사랑이 많은거라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했다.




요즘엔 집, 기관, 학원, 집 앞 카페만 왔다갔다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심심해지거나 일을 하다가 지칠 때에는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 또 다른 룻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다니곤 한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룻 아줌마는 내게 "룻" 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종종 따라다닐때마다 하루에 한 번씩 하나님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스페인어로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많은 페루 사람들이 그렇듯 아줌마도 사연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 룻 아줌마. 출근하기 전 혹은 운동가기 전마다 나를 꼭 안아주는 룻 아줌마는 내가 하루 중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 상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고 가슴 아픈 일로 가끔은 뻐근해져도 정말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