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Peru 현지생활

1년을 준비하는 회의

생즙 2011. 4. 3. 00:31


페루에 와서 세 번째로 회의에 참가했다. 첫 번째는 OJT 기간 때, 두 번째는 개학하고 선생님들 대상으로 하드웨어를 가지고 첫 수업을 하면서, 그리고 세 번째는 이번주 목요일이었다.


 


화요일에 델리아 집에 초대되어 놀러갔더니만 글로리아가 델리아 방에서 열심히 뭔갈 적고 있길래 뭔가 물어보니 목요일날 있을 회의 준비 중이랬다. 그러면서 목요일에는 수업이 없어서 애들이 학교에 안 나오는데 그 날 나도 수업이 없으면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디렉토르에게 물어봤더니 난 이와 상관없이 수업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결국 목요일날 놀러가자는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끝이났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머무르고 있는 기관은 일 년중에 한 번은 수업도 쉬고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1년동안 어떻게 학교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참석하라는 말도 없었는데 디렉토르에게 시간 확인하고 나도 막 혼자 이런저런 준비를 해서 무작정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다. 디렉토르는 8시 30분부터랬는데 알고보니 8시부터였다. 그래서 혼자 30분이나 지각했는데 델리아와 글로리아가 자리 맡아놓고 손 흔들어줘서 얼렁뚱땅 죄송합니다 하고 후딱 앉아서 회의에 참석했다.




그래도 이제는 말을 들으면 그냥 귀에서 흐르지 않고 귀에 감기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회의는 말씀들도 워낙 빠르고, 개인적으로 페루 사람들은 말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남의 말 듣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살고 있는 집에서도 마찬가지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고 어떤 안건이 나오면 좋게 말하면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하지만 각자 동시에 목소리 높여 말하는 걸 보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는 않다. 내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전에 OJT에 왔을 때, 내 코워커로 지정되었던 마테오 아저씨는 내가 출근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것 같다. 나는 나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이 혹시나 잘리는 건 아닌가 해서, 위험할수도 있다는 충고에도 굳이 오후로 잡았는데 내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이 분들이 아닌 마테오 아저씨였다. -_- 아저씨 어디가셨냐고 물어보니 다들 아저씨는 여행가셨다고 둘러댔는데, 정말 여행을 가신건지, 계약직이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 때문인거 같아서 마음 한켠이 무척이나 찜찜하다,, 아저씨에 대한 정보가 나한테 다 넘어왔는데 컴퓨터, 전산망 담당이었던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다. 파견 후 단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기기 노트북. 이 교육을 담당할 새로운 린다 레이나라는 사람이 왔다.(페루에서는 이름과 성이 두 개씩 있다.) 컴퓨터가 너무 느리니 이걸로 대체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또 다시 불거진 컴퓨터 이야기. 이 분들은 내게 또 물어봤다. "한국은 컴퓨터를 언제 선물로 줄껀가요?", 단원으로써 나와는 다른 입장인 사람들도 많다. 이럴 때는 무조건 너네 하기에 달렸다고 말해서 강하게 나가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굳이 처음의 기대치를 높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내가 이 곳으로 파견이 된 건, 내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굳이 돈을 들여서 기계를 바꾸려고 온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IT상황이 여긴 정말 좋지 못해서 필요성을 느끼곤 있지만 아직 파견 초짜인 나는, 현지파견 6개월을 채우지 못하면 컴퓨터를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를 신청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모른다 라는 말로만 일관하고 있고, 최소 6월이나 7월이 되야 상사에게 여쭤볼 수 있고, 그를 위해서 지금도 여러분들 사진을 찍으면서 열심히 상사에게 드릴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라고 했다.




잠깐 여기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자면, 페루에서는 단원은 2년동안 현지물품지원과 프로젝트 비용을 조달 받을 수 있다. 현지 물품 지원은 2000달러 내에서 신청할 수 있고 파견 직후 신청도 가능하다. 하지만 프로젝트 비용은 최대 약 30,000달러 까지 가능한데 일반적으로는 20,000달러까지만 분위기상 인정되는 것 같다. 그리고 워낙 큰 프로젝트이다 보니 파견 6개월 이상이 되야 신청이 가능하고,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다 뽑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신청한다고 해서 꼭 되는 것도 아니므로 안 될 수도 있는 걸 생각해서, 일단 나는 이 곳에서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6개월 이상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고, 상사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회의 중 내게도 발언권이 주어졌다. 정말 엄마같으신 마리솔 선생님이 너 정말 말 할 수 있겠냐며 놀라시길래, 일단 만들어온 프린트들을 나눠주고 그 동안 수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들을 이야기햇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러분들을 도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갑자기 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면 델리아가 정말 친절하게도 내가 알 수 있게 노트에 필기를 해줬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 중이야. 사람들이 너에게 이런 점이 불만이래. 모든 건 니 말에 달려있어. 등등등." 얼마나 고마웠는지ㅠ 어쨌든,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결과를 도출해냈다.

 


길고 길었던 5시간의 회의가 끝나고 머리를 묶고 왔는데, 여기 와서는 보통 머리를 한쪽에 쏠려서 묶는다. 머리가 작아보이는 효과(?)와 그냥 질끈 묶는 거지만 내 나름의 변화이기도 하고 해서 머리를 그렇게 묶는데 머리를 묶고 들어오는 날 보더니 유디와 델리아가 갑자기 머리를 풀더니 갑자기 모두 머리를 나처럼 묶었다.ㅋㅋㅋ 그래서 나는 유행은 선도하는 여자라며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같이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ㅋ 회의시간 내내 딴 짓하던 델리아는 회의중  몰카를 찍는 날 보면서 자기가 만든 공책이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니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화장실에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ㅋ 유치원 선생님이고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델리아는 정말 어린이같다.


회의에서도 그랬지만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 발음과 스페인 발음이 많이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생각하기로는 내가 들리는 말을 많이 흘리는 이유도, 내 말을 상대가 잘 못 알아 듣는 이유도 내 발음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을 하고 델리아에게 혹독한 발음 훈련을 받고 있다. 그래서 입술에서 피맛이 날 지경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술에 굳은살이 박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년에 이 회의에 다시 참석 할 때는 좀 더 내가 하고 싶을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아직도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