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Peru 현지훈련

페루 현지 적응 훈련 4주차 OJT

생즙 2010. 12. 17. 01:21




페루에 와서 어리버리하게 다니던게 어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났다.
이번주 일주일동안 OJT기간이다. 기관에 미리 방문하여 내가 무엇을 할 지,
그곳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가 조율해 가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기들은 모두 이끼또스, 아레끼파, 뜨루히요, 뚬베스, 삐우라로 떠났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들 비행기 표를 들고서 설렘 반 두렴 반으로 있는데
어짜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꺼 같았다 ㅠ

어쨋든. 나는 정말 길치다. 공간감각이 정말 부족한데
현재 머물고 있는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다고 하는 San Juan De Miraflores에
과연 혼자 갈 수 있을지, Av.Principal 앞에서 무사히 내릴수나 있을지 내내 걱정이 되었다.

아직도 내 말은 아가 수준인데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걱정이다 ㅠ ㅠ
학생신분에서 벗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 더더욱 부담감이 큰 것 같다.

어쨌든. 동기들이 다 떠났고 혼자 리마에 남아있다.
OJT 기간 동안에는 보통 집을 구한다고 하고, 리마는 특히 집값이 비싸서 집 구하기도 힘든데
나는 이래저래 운이 좋게도, 선배 단원이 귀국을 앞두고 있거 그 집을 물려 주기로 했다.

이따가 연락을 해서 정확하게 정해야 하겠지만, 홈스테이로 기관과 가까운
Surco 지역에서 지내는 걸로 결정을 해서 꽤 널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화요일 오전에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가서 가비노 아저씨와
유재림 관리요원님과 함께 San Juan De Miraflores로 출발을 했다.
먼지도 많고, 정말 툭 치면 무너질 것만 같은 집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학교가 나왓다
.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더니 학교 벽에 Bienvenida Yun A Cho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것도 태극기와 함께. 그냥 조용히 인사만 하고 나오겠거니 하여 코이카 잠바 하나 걸치고
갔더니만 진짜 무섭고 떨려서 한국에 돌아오고 싶을 정도였다.

관리요원님도 이럴줄은 몰랐다며 당황하시긴 마찬가지셨다.
게다가 더 충격적이었던건 모든 아이들이 태극기와 페루국기를 들고선
"안녕하세요 Miss YUNA CHO" 를 외쳤다는 거였다.

앞에 나가서 국기계양식이 끝나고 마이크를 잡고 덜덜 떨면서 인사를 했고
행진하는 아이들이 또다른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했다.
그리고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내 몸통만한 화환을 선사해줬다.



요 쪼그만 아가들은 유치원 아가들이라고 한다.

아뇬 아쎄죠 쥬 나 초 ㅋㅋㅋ

나는 컴퓨터 단원으로 왔고, 유재림 관리요원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교장선생님게 직접 나는 voluntaria로써 이곳에 고용된 직원이 아님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OJT 둘 째 날에는 혼자서 풀어나갈 것을 말씀하시며 교장선생님과 약속을 잡아주셨다.



머리 속에 수십만가지 생각이 들던 이순간.
아, 이 학교는 코이카 소장님의 운전기사 까를로스 아저씨의 딸이 다니는 학교라 한다.
그래서 오전에 아저씨가 내내 나한테 고맙다고 했구나 ㅠㅠ

정말 양 두 어깨가 무거웠다.
코이카 봉사는 결정되어있는게 아니다. 내가 가진 분야를 지고 이 곳에서 원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율해야 한다.

그 이유는 현지에서는 무보수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현지인들의
직장을 뺏어갈 수도 있기 대문이다. 그래서 혹여나 직장에 뺏길가봐 처음 이곳에 일하는
현지 분들은 나같은 봉사자들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교무실 대신 학교 컴퓨터실을 내 교실로 받았다.
학교여건상 교무실은 없고, 컴퓨터실에 책상을 붙여서 다과를 한다.

이 컴퓨터는 windows98이 깔려져 있었고, 정말정말 느렸다. 속이 터질정도로.
게다가 몇 컴퓨터는 아예 켜지지도 않았고, 애들 수에 비해 컴퓨터가 너무 적어서
몇몇 아이들은 한 컴퓨터에 둘씩 혹은 셋씩 붙어서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었다.

둘 째날, 그러니깐 수요일에도 OJT를 갔더니 선생님들이 물어봤다.
"너는 이 곳에서 무슨 일을 하러 왔니?"

그래서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일단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찾아가는 것부터 할꺼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의 코이카 활동을 들어서인지 이곳에서는 직접 대놓고
컴퓨터를 새로 들여놓아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컴퓨터가 참 느리지 않냐고.
이 컴퓨터실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혹시나 이 얘기가 나올까봐 상수오빠가 알려준데로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계속 물어보셨다.
"학교 컴퓨터가 느리죠?"

그래서 나는 네, 컴퓨터가 느리긴 하네요. 라고 했더니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저 coreana가 컴퓨터가 느리다고 했습ㄴㅣ다 라고 말을 했다.

아. 그동안 활동하면서 마음고생하던 선배단원들이 단번에 이해가 갔다.
그냥 두 어깨가 많이 무겁다.





워낙 가난한 동네이다 보니 외국인이 거의 없다.
단 두번이지만 아직 이곳에서도 버스에서도 동양인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나는 어딜 가든 걸어가는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꼬맹이들은 무작정 와서 볼에 뽀뽀하고 과자도 사서 주고 막 안기기도 하고,
어른들은 얼굴이 뚫어질정도로 쳐다보시다 말을 거신다.

어디서 왔냐, 어디서 일하냐, 나는 무슨 일을 한다.
혹은 china 냐며 놀리기도 하고, 뭐 다양한 일들이 참 많았다.



가족들이 참 많이 생각나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