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인생의 한획/국내훈련

인생에 한 획을 그어라

생즙 2010. 11. 3. 00:22

졸업을 앞두고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살면서 보람되고 즐거울 수 있을까?

그저, 그냥 추상적으로만 내가 가진 기술로 다른 사람이 잘 살 수 있도록 돕고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하고 조언도 구하고 고민도 하다가 코이카를 알게 됐다.

어렸을 적에는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수진이라는 친구가 외교관이라는 꿈을 갖고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걸 보았을 때

너무도 멋지게느껴지고 부러웠고 막연히 동경했던 게 지금까지도 생생한 걸 보면
내가 사는 곳에서 1mm 만큼만이라도 움직인다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다.

어쨌든,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지원을 했다.
아직 졸업반인 내가 운 좋게도 서류를 통과했고, 굉장했던 압박면접도 통과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막상 합격하고 나니 남겨두고 떠나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졸업을 위한 프로젝트도 마무리를 해야해서 나때문에 지혜와 선미도 고생을했다.

그리고, 국내 훈련 하루 전에 구현에 성공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리고나서 시작한 국내훈련은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았다.
진심 내가 국내훈련을 통과하고 나와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기숙사는 5인 1실이었고, 흥국생명연수원에서 훈련생활을 했다.
나는 행복한 114호에 배정이 되었다.

정말 신기했던 건 수영언니와의 만남이다.
처음에 면접을 보러 가던 날 버스에서 만나 함께 했던 수영언니와
처음 입소날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같은 방에 배정이 되었다.



함께 하던 언니들은 간호사 생활을 하셨던 두 분, 체육인 언니들 두 분이었다.
아, 승미언니는 체육인을 떠나 정말 태릉인이었다.
집에 돌아왔음에도 밥만 먹으면 자꾸 승미언니가 생각이 나가서 밖에 나가게된다 -_-ㅋ


평소에는 오전엔 스페인어 강의 오후엔 현지에 필요한 인격적인 강의와
의료강의, 활동에 필요한 ODA 지식들에 대한 강의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이런 의료지식 강의였다.
심폐소생술 강의, 우울증이 왔을 때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
누구나 건강한 것 같아도 외로움은 즐겨야 한다는 것.



외부활동도 많았다. 외국에 나가 김치를 담가야 할 일을 대비하여
김치만들기와 약식 만들기를 했다. 하지만 난 알고있다.
절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날꺼라는걸 ^^^



40 년전 대한민국이 무척 가난했던 때에 역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의 생생한 현장을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랜덤으로 뽑았는데 운이 좋게도  PeaceCorp 단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들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6개월이 고비라고.

젊었을 때는 고민도 많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돌아봤을 때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있다라고. 앞으로 40년후 나는 이 시간을 뭐라고할까?

 

할배가 찍어 준 사진. 이 날은 연탄봉사활동을 했다.
1달러의 날이라 하여 국내훈련 중 하루는 밥 한끼가 1달러 이내였다.

나는 사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과자를 꽤나 먹었음에도 꼬ㅐ 힘들었다.ㅠ
평소의 식사 비용을 아끼어 연탄은행에서 연탄을 사서 필요한 분들께 배달해드렸다.

나는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탄을 날라봤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일에 동참한다는게 무척이나 즐거웠던걸로 기억한다.  



오대산 산악도보훈련을 했다. 8시간동안 산탄것도 처음이다.
조기와 조가, 조구호를 만들기 위해 팀을 나눴다.

이것도 할배가 찍어 준 사진. 지현언니, 나, 하나언니 셋이서 같은 조가 되었다.
나의 강력한 추천으로 하나언니는 피카소 박으로 등극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생각했던것처럼 지겹지도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다.
돌아오던 차 속에서 거의 기절했을정도로 피곤했지만.. 어쨌든 좋은 경험이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슴 뛰는 일을 발견했다. 북.
돌아오고나면 나는 다시 북을 치리라. 국악에 대한 공부가 하고 싶다.



연예인 포스가 폴폴 나는 승미언니와 볼매 하나언니는 언제부턴가
방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운 언니들 ^.^

특히 난 하나언니가 했던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집에있을 땐 나오고 싶고, 나오니 집에 가고 싶고 이런걸

해도 지랄~ 안해도 지랄~ 이라고 한다는거 ㅋㅋㅋㅋㅋㅋㅋ
집에 가고 싶을때마다 하나 언니 말을 생각하면서 꾹꾹 참았다는거 언닌 알까?ㅋ



일년후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나한테 편지를 쓰는게 정말 쑥쓰러워서
그냥 난 겨우 써내려갔는데 여기저기서 눈물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마지막엔 단복을 입고 발단식을 했다. 
그리고 다같이 마지막 만찬.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헤어지는구나.

하루하루 나가고 싶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 댔는데.
진짜로 훈련이 끝나는 날이 왔다. ㅋㅋㅋㅋ 아 혼자 글쓰면서도 뭉클하다.



내가 참 좋아했던 할배.
스리랑카로 떠나는 할배는 마치 도인같았다 -_-..

내가 놀리고 철없기 졸졸 따라 다니는데도 할배는 정말 할배같아서
그냥 할배랑 있으면 이유없이 맘이 편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할배가 나중에 날 기억할 때 너무 무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배말씀으론 이바닥에선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거라고했다.

할배 건강하세요!

어쨌든, 국별모임 때 성 조교님께서 돌아본 2년은 본인의 인생에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 말씀을 듣고 승미 언니는 정말 감동 받아하셨는데, 진짜 생각할수록 멋진 이야기다.

어쨌든 결국엔 간다. 지금 잘하는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오늘을 돌아보면 잘 한 결정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모처럼 조용히 사색하면서 글을 쓰고 싶은데 엄마는 옆에서 내게 계속 화를 내고있다.
빨리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