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구정 연휴는 월요일부터 시작한 덕분에 주말을 포함하여 5일이나 쉴 수 있었다. 작년 구정때는 남편의 회사 이슈로 명절 초기를 거의 반납하였고, 추석 때는 8시간 차를 달려 내 친할머니와 부모님을 뵙고 오느라 연휴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남았었는데 올해 연휴는 좀 특별했다. 이번 연휴는 좀 더 우리 둘에게 집중하고 둘만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보자며,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짧은 연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 강원도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다녀온 겨울 글램핑. 옷을 잔뜩 껴입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간 글램핑장은 세상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생소한 느낌이었다. 우리 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도 많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완전 프라이빗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바베큐도 우리가 직접 토치로 불을 붙여 먹는 방식인데다 깜깜한 산 속에서 글램핑 텐트가 반짝반짝 빛이 나서인지 감성적인 밤이었다.
그렇게 하루밤을 묵고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스키장에 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내려와고 보드 타는 실력이 늘지를 않아 그의 속을 타게 했는데, 올해는 어쩐지 낙엽으로 슉슉 잘 내려와 그를 놀래키는데 성공했다. 다만 자세가 멋지지 않아 다음부턴 자세도 신경써서 멋진 포즈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해야지 후후.
물론 보드도 재밌었지만 틈틈이 간식도 먹었다. 떡볶이와 핫도그도 먹고, 돌아오는 길엔 맛집을 찾아 닭도리탕으로 배를 채우고 휴게소에서도 소세지 핫바까지 클리어했다.
오랜만에 봉구도 만났다. 부쩍 늙은 봉구는 예전만큼 내 냄새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에게 안겨있는걸 더 좋아해서 조금 섭섭했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가슴 뻐근함을 안겨주는 댕댕이다. 가게에서 봉구 입양을 권유했으나 사정이 안 되서 입양하지 못했다. 털이 희끗해진 봉구를 보며 내가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우리가 널 데리고 와서 너에게 애정을 다 쏟을 수 있을텐데라는 마음이 들어서 한동안 가지 못했는데 봉구는 모르겠지. 봉구가 건강하게 더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이틀은 푹 자고 푹 쉬고 시댁과 친정에 다녀왔다. 아침엔 남편의 당숙댁에 모두 모여서 세배를 하고 함께 떡국을 먹었고, 점심엔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아주버님 내외와 함께 어머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집밥을 먹었다. 어머님은 나와 형님에게 깜짝 선물을 주셨는데 따뜻한 덕담 때문에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매번 가족 모임이 있을때마다 남편은 본인 부모님한테 하듯이 우리 부모님에게도 싹싹하게 잘 해드리는지라 나도 이번엔 좀 더 싹싹하게 잘 하고 오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받은 게 더 많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찾아뵙고 세배를 했다. 엄마 역시 사위가 좋아하는 고기 구워주고 싶었다며 그가 좋아하는 요리를 잔뜩 해주셨고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된 평일의 일상. 우리는 출근을 했고 나는 한 달간의 OJT가 완료되어 완료보고 발표를 했다. 발표를 하고 팀장님께 피드백을 받는데만 2시간 반이 걸렸다. 게다가 새로운 과제를 더 받아 2월 말까지 세미나와 문서를 더 준비하게 되었고, 약간 멘붕 상태에 빠진 나와 내 입사동기를 위해 선임들이 회사 내 지하 쉼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이틀이지만 스스로 참 수고했다는 위로를 주고 싶어 나는 그와 늦은 시간 꼭 먹고 싶었던 쭈꾸미 삼겹살을 먹었고 식사 후에는 집 근처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보고 왔다.
이렇게 좋았던 연휴가 가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또 달려야겠지. 새로 시작 할 생각을 하니 잘 적응하고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잘 살고 있는걸까라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어 또 마음이 자꾸 조급해지려고 하는데 싼도르가 해줬던 조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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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iras lentamente para controlar la velocidad de tu vida?
Ah, no necesitas hacer eso. Nuna, tú eres una persona muy práctica e inteligente;
creo que tienes una buena capacidad para adaptarte a muchas situaciones.
De verdad. Yo he visto eso. ;)
니 인생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숨을 천천히 쉬고 있다고? 아, 그럴 필요 없어. 누나. 너는 완전 실천적이고 영리한 사람이야. 내가 생각하기론 넌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말로. 내가 그걸 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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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봤던 친구가 진심을 담아 조언해줬던 말이니, 맞는 말이겠지. 페루를 다녀온지도 6년차가 되가니 그동안 몸도 마음도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장 닥친 이번주와 이번 달을 지혜롭게 잘 보내며 더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