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샀다. 거의 無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생활은 매 단계가 퀘스트를 해결하나가는 것과 같았다. 한 단계씩 클리어 될 때마다 레벨업이 되는 느낌. 서로에게 의지하며 해결해야 했던 극한적인 상황들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비어있던 우리의 살림을 채워가고 늘려가는 즐거움은 덤.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계약 후 마주한 여러 가지 변수들과 개인적인 일들로 많이 흔들렸고 속 시끄러운 일도 많았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다행히도 무탈하게 모든 단계가 끝났고 새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기쁘고 안도감이 들던지 눈물이 났다. 부동산 아저씨, 전 집주인 그리고 전 세입자까지 집이 우리를 선택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라며 우리의 또다른 시작을 축하하고 축복해주셨다.

밖에서 봐도 근사했던 우리집은 살아보니 더 근사하다. 채광이 좋아 낮에는 한없이 밖을 보며 멍을 때리는데 지친 마음이 점점 건강하게 차오르는 기분. 반면 밤에는 온 동네가 반짝반짝 빛나서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며 저녁을 보낸다.

이렇게 더 근사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오랫동안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대화하고 준비했기 때문이기도하다. 첫 신혼 집이 둘이 지내기는 안성맞춤이었지만 살다보니 불편하게 느껴지던 점들이 분명 있었다. 우리는 그런 불편했던 점들을 리스트화하고 다음 이사 때는 꼭 반영하자고 단단히 벼뤘다. 예를 들어 세탁기는 무조건 제일 큰 용량으로 그리고 요리는 인덕션이 아닌 가스렌지를 써야지! 등등 이사를 가면 어떻게 개선할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덕분에 어떤 가전을 살지와 원하는 집 구조, 가구, 인테리어 컨셉 등등이 서로 잘 맞아서 정말 우리가 원하는 최적의 환경으로 예쁘게 잘 꾸밀 수 있었다.

요즘엔 재택 근무로 전환이 되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내고 있다. 낮에는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저녁엔 퇴근 한 그와 함께 서재에서 함께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업무 시간에는 사과와 커피를 들고 들어가서 일을 하는데 푸릇푸릇한 창가를 보면 조용한 카페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일을 하다 중간중간 혼자서 창을 보다 감탄이 나온다. 이런 아름다운 집에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한다.



새로운 집에서 맞은 결혼기념일. 세 번째 결혼기념일을 자축하며 특별한 날 가려고 아껴뒀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고, 그는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너무 비싼 선물이라고 부담스러워하는 나에게 그동안 우리 일에 고생했으니 나를 위해 좋고 필요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은 정말 말을 참 예쁘게한다. 그런 그를 위해 나도 구두를 선물해줬다. 좋은 신발을 신고 함께 꽃길만 걷기를.

재택으로 전환이 되고, 교회도 벌써1년 가까이 문이 굳게 닫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회사도 교회도 가지 않은 덕분에 나는 점점 더 집순이가 되고 있다. 재택이라고 해서 일을 안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동 시간이 줄어든만큼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좋다. 가장 좋아하는 서재에 앉아있으면서 바깥에서부터 들리는 꼬맹이들의 까르르 소리. 고요하게 뉘엿뉘엿 해가 지는 붉은 하늘을 구경하는 여유로움이라든가. 그가 오기 전 그를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까지. 혼자서 충전을 마치면 그가 도착하고 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 특히 좋은 건 언제나 자기 전 마지막에 씻고 나오면 그가 매일 드라이기로 내 머리를 말려준다는 거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꽉 차는 시간.

좀 더 넓은 곳으로 가면 꼭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었다. 보드게임들을 쟁여놓고 같이 놀고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고 티비도 보고. 어렸을 때 할머니댁에서 지낼 때는 언제나 친구들이 모이는 다락방 같은 곳이었는데,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부모님과 지내면서부터는 예전만큼 친구들을 대거 몰고와서 집에 잘 초대할 수 없어 아쉬웠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께 죄송하다.) 이사를 오고 집에서 북적이며 다같이 널찍하게 둘러앉아 놀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감사한 일들이 많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거저 주신 것이 없다. 앞으로도 감사할 일이 많겠지만 그만큼 또 다른 위기가 분명 있겠지. 그래도 좋은 추억들과 감사함 일들을 자양분 삼아 또 힘을 내서 오늘을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