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기록

20180517 배우자로부터

생즙 2018. 5. 17. 01:53

 

 

 꽃다발을 받았다. 퇴근 후 정류장 앞으로 마중 나온 신랑과 손 꼭 잡고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는 중이었다. 그런데 먼저 들어갔던 그가 돌아와 불쑥 꽃을 내밀었다. 결혼해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로맨틱한 말과 함께. 꽃집이 문을 닫기 전에 들르려고 후다닥 퇴근했다면서 선하게 웃는데 바쁘게 서둘렀을 그이 모습이 상상이 되서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마음과는 다르게 쑥쓰러움에 "뭐야, 뭘 이런걸 샀어." 라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행복하고 따뜻한 밤이었다.

 

 

 

 

 

 

 

 나의 20대는 언제나 혼자서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한다는 강벽관념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나를 지키고 내 인생을 관통 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했고, 해답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전투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게걸스럽게 책을 읽기도 했고, 여행을 떠났고, 아르바이트, 공부 등 정말 열심히 살았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아득히 먼 곳에서 분명 내게 근본적인 행복감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누군가 지정해주는 삶이 아닌 내가 지키고 만드는 인생을 살면 아름답고 행복할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오랫동안 바랐던 삶의 공간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아름답지 않았고, 그 끝에는 내가 기대했던 행복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를 만나면서 내가 많이 바뀌었다. 나는 언제나 내일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벌어질 최악의 상황에 대한 걱정에 집착하다 무기력해지는 반면 그는 내가 당장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소흘히 하지 않도록 끌어주는 사람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비워내도록 그리고 내가 현재 놓치고 있는 점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타입인데, "괜찮다"며 늘 내게 깊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같이 생각하자고 말하는 그와 교재한지 벌써 5년 4개월이 지났고, 나는 내 살아왔던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엔 남편과 내 오랜 친구 L양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가방순이 역할을 하느라 비를 뚫고 용산까지 이른 시간에 갔는데 남편이 피곤함을 무릎쓰고 동행해서 나와 함께 자리를 지켜줬다. 여담이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나 우리 모두 유부가 되었다. 진짜 우리들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참 자주 싸우고 토라지던 기억이 많은데, 이제는 싸우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ㅎㅎㅎ  비가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흠뻑 내리던 비만큼 친구의 앞날도 행복한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함께 심야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거다. 주말 오후에는 남편과 자전거를 타거나 치맥을 하기도 하고 종종 밤 늦게 영화를 보러 나온다. 가장 최근에는 어벤져스를 보고 왔는데, 몰임감이 엄청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영화가 얼마나 재밌었는지 끝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행복하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주말을 정말 알토란 같이 보낸 느낌이었다.

 

 

 

 

 

 

이번달은 어쩌다보니 집에서 해먹기보다는 외식을 하는 날이 많았다. 특히 집 앞 레스토랑에 꽂혀서 파스타와 피자도 자주 먹었다. 우리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도 갔는데 두 분 모두 여기에 푹 빠졌다. 이상하게 여기서 식사를 하면 서비스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닌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그리고, 오랫만에 봉구랑 놀고 집에 가는 길에 연애 초반에 자주 갔던 오리고기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때는 돈이 없던 때라 싸고 풍족하게 먹을 수 있어 즐겨 왔던 곳이었는데, 우리 둘 다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게 되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어 올 수 없게 되었다며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와 버킷 리스트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나는 문득 그에게 꿈을 이룬거 같냐는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그는 꿈을 이뤘고 지금도 Ing 형이라며 앞으로도 매일 꿈을 이루는 삶을 살거라고 했다.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이뤘다고 하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꿈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란다. 그가 떠올리는 현재와 미래에는 언제나 내가 함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안도감과 안정감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시댁 모임을 가면 친척 문들이 우리에게 잉꼬부부라는 애칭을 붙여주셨다. 어디에 가든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녀서인데 10년이 지나고 내가 호호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그 애칭이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이와 관련해서 얼마전에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뜬금없이 엄마가 내가 결혼을 하고 이렇게까지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결혼을 빨리 시키는게 나았겠다며 웃었다. 왠지 모를 민망함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도 배시시 웃었다.  

 

 

 무튼 이렇게 배우자로부터 좋은 기운과 사랑을 무럭무럭 받고 있는데 쓰다보니 정말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잘 새기고 그가 나를 아껴주는만큼 나도 날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그만큼 알면 알수록 더 애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