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페루에서/현지생활

2012년 7월 일기

생즙 2012. 7. 6. 15:39


1.  기관활동



이전에 컴퓨터 단원들끼리 모여서 여러가지 정보를 공유한 이후로 수업이 많이 수월해졌다. 그래도 요즘엔 사소한 문제들이 자꾸만 발생한다. 예를 들면 이전에 학부모들이 쳐들어와서 나에게 크게 따진 이후로 온 충격과, 요즘엔 사춘기가 오는 5학년 6학년들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타자연습을 시키는데 "왜 우리가 익숙해진 방식을 떠나서 니 방식을 따라야하냐?"라고 따지지를 않나. 그냥 사소한 문제들이다. 정말 사소한 문제들인데 나는 왜이리 단단하지 못한 것인가. 




            




수업거부때문에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아서 오늘은 학교에서 담당교사 다니엘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만, 안 그래도 그 소식 듣고 학부모회의를 소집해서 "Miss yuna는 이 곳에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을 하기 때문에 시간과 수업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밖에 없으며, 엄연한 교사이기에 나이가 어려도 무조건 존중해줄것." 이라고 당부했다며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학부모들과 하는 수업이다. 집에 컴퓨터 없는 아주머니들이 태반인데 이제는 본인들 자녀들보다 컴퓨터를 더 잘 하신다. 이젠 더블클릭도 잘 하시고. 다만 안타까운건 내가 돌아가고나면 이제 어떡하냐는거다. 

애들은 그렇다쳐도 엄마들은 어쩌지? 






2. 스승의 날 행사 




작년 스승의 날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그냥 후드티 하나 걸치고 갔더니만 삐까번쩍하게 차려입은 선생님들과 함께 광대를 초청해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야해서 굉장히 민망하고 거의 처음 춰보는 춤. 그것도 꿈비아.(우리나라로 치면 뽕짝).

정말 도망가고싶었을정도로 초반의 내게는 좀 악몽이었는데 올해도 스승의 날이 왔다. 





   


 



며칠전부터 기관장이 오후마다 내 수업하는데 기웃기웃거리시더니 결국은 불러서 이번주 목요일에 스승의 날 행사해야 하니깐 학교에 오전에 와서 행사에 참여하라고 단단히 일러준다. 이번 행사때는 무얼하냐며 또 춤을 추냐며 내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더니만 "올해는 춤대신 농구와 축구를 할 계획" 이라며 학교 츄리닝을 입고 오라고 했다. 




행사시작은 11시였는데, 역시나 페루타임은 정확하다. 11시 30분에 정확히 행사가 시작됐다.^^ 

컵으로 탑쌓는게임, 배구, 이런 게임을 하다가 엄마들 6명과 선생님들 6명이서 농구를 했다. 나도 꼭 농구에 참여하고 싶다고 졸라서 참여했고 한 골 넣었다.ㅋㅋㅋㅋㅋㅋㅋ 결과는 6대 4로 선생님들 승리. 




게임이 끝나고 다같이 모여서 점심식사를 했다. 스승의 날이라고 내 선물로 페루 전통가방과 모자를 줬다. 내게는 정말 탁월한 선물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진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동안 함께 했던 쎄뇨리따 마갈린 선생님이 계약이 끝나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더니 집에 가버렸다. 왜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들이 자꾸만 이렇게 떠나는 걸까? 




작년에 진짜 엄마처럼 따랐던 로사 선생님도, 나를 참 많이 도와주셨던 프란시스코 선생님도, 이번엔 마갈린까지.... 

내가 너무 황당한 표정으로 있자, 쎄뇨르 움베르트가 와인을 병째로 가져다줬다........ 

그리고 말하신다. 이것이 인생이라고. 








3. 스페인어



스페인어가 참 좋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학원에서 꾸준히 공부해서 드디어 중급반 마지막단계에 올랐다. 

몇 달동안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씩 학원사람들끼리 모여서 다같이 요리를 하기도 하고, 같이 와인을 마시면서 놀기도한다. 




보통 모일때는 각자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오는데, 독일친구 앤이 종이팩으로 나온 와인도 싸고 맛있다며 노란 봉지에 코카콜라랑 같이 담아왔다. 무슨 와인이 우유처럼 종이팩에 나오냐며 완전 박장대소했는데.........맛있었다..........꾸준히 사고있다. 

그냥 술이라고 하면 맥주, 소주, 위스키 이런게 단 줄 알았는데.  아무튼, 신기하게도 외국 사람들은(내가 아는 한) 맥주보다는 정말 와인을 참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겹치는 나라가 없이 보통 한국인인 나를 비롯해, 내 또래인 중국인 토마스와 독일인 앤과 러시아 사람 마리아 이렇게 따로 보는 경우가 잦고, 가끔 다같이 모이는 때에는 가정이 있으신 벨기에 아저씨 데릭과 브라질 아주머니들 마라, 로시마라, 그리고 아리에떼 이렇게 모두 모여서 차를 마시러 갈 때도 있다. 특히 로시마라 아줌마와 데릭 아저씨는 내가 학원을 지각하기만 하면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며 엄청 걱정해주신다.ㅋ




저저번주에는 브라질 아줌마 마라네 집에서 브라질 아주머니 3총사가 브라질 요리를 해줬다. 이 날은 로시마라 아주머니의 두 아들도 왔는데, 우리 나라 꼬맹이들처럼 계란 후라이 없으면 밥 안 먹겠다고 땡깡을 부리다 혼나는 걸 봤다. 포르투갈말은 신기하다. 노래같다. 




앤과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업차로 모인 사람들이라 그런지 집이 워낙 좋다. 갈 때마다 촌스럽게도 입이 떡 벌어졌다. 자꾸 오오 우와 하는 감탄사도 막 나오구 ㅠ 특히 토마스는 나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워낙 부자에, 수업시간에 나는 맨날 고전하는데비해 원가 똑 부러지는데 왠지 모를 반성감과 부러움도 밀려오고 신기했다. 




게다가 모두들 이야기하는 걸 워낙 좋아한다. 난 주로 듣고 있는 편인데. 와인을 마시다보면 종교관, 사랑관, 인생관 이런것까지 나오면서 진지한 이야기들을 한다. 외국인들끼리 이야기하는건데도 분명히 못 알아듣겠는 단어들이 꽤 많이 나온다. 덕분에 스페인어 단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가끔은 영어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덕분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국적이 참 서로들 워낙 다른데도 마음이 잘 맞아서 가끔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고, 참 감사한일이다. 





4. 여가시간 



요즘엔 한국에 가는 비행기표를 찾고 있다. 그냥 비행기 표 하나 뚝딱 사면 되겠지 싶었는데. 귀로여행과 맞춰서 움직여야 하고 프로모션이 뜨는 표가 있는지도 봐야하고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비행기표 찾다보면 시간이 뚝딱간다. 내가 벌써 한국 갈 때가 다 되가는구나.. 시간이 가긴 가는구나. 여러모로 싱숭생숭했다. 




      




살사를 못 간지 꽤 오래됐다. 학교를 다니다보니 시간이 어중간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대신에 기관이 끝나고 나면 시원한 탄산수 한잔들고 집 앞에 있는 영화관에 가곤한다. 평일엔 우리나라 돈으로 2500원정도에 3D도 6000원이면 보고워낙 가까우니 거의 잠옷바람으로 자기 전에 후다닥 가는데, 이 곳은 지정좌석제가 아니라서 3D 안경을 쓰고 사람들 별로 없는 곳에서 편하게 영화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잠이 쏟아져서 곧바로 잔다. 동갑내기 친구 C군은 뭔가 청승맞다며 불쌍해했지만, 요즘엔 혼자 있는 시간도 참 좋고 소중하다. 물론 너무 이런 시간이 길어져서는 안 되는것도 맞다. 




수업이 빨리 끝나는 날은 책 한 권 들고,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간다. 손님이 별로 없을때는 알바생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즐기기도 하고, 최근에 내가 읽은 책은 "하나님이 사랑한 야곱" 이라는 소설책인데. 4번은 다시 읽어봤다. 성경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을 모티브로 하여, 여자 쌍둥이 언니가 동생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있어 열등감에 젖어있다가 그 모습을 넘어서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하게되면 그냥 깝깝한 원통안에 같힌 기분이 들어서 누군가가 "니가 믿는 신이 차별해도 되는거야...?" 이렇게 시작해서 내게 질문을 하면 아무런 대답을 못 하겠다. 





5. 잡담




얼마전에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를 했다. 기쁘게도 모두들 취직이 됐다. 각자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니 내 기억에 있는 친구들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에 어색했는데 바꿔서 생각해보니 그만큼 나도 많이 달라졌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좋은 습관이 생겼다. 내 나름 생각이지만. 

벌레한테 크게 시달린 이후로 내가 생각해도 난 참 깔끔해졌다. 방을 어지르지 않기 시작했다. 정리하지 않는 습관은 절대 못 고칠 고질병인줄 알았는데 조금만 방심해도 벌레가 꼬이니 ^^ 인생사마 새옹지마라고하더니 벌레 덕택에 조금 나아졌네? 흐흐 




여행을 다녀오고나서 재정사정이 자꾸 너덜너덜해지면서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고민이 들어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큰 돈이 들어오는게 아니라 정말 여기서 지낼 수 있을만큼의 돈에다가 꾸준히 학원도 다녀야하고 싸지 않는 차비에 그 이외에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생필품 구입비 이런 데에 예산을 세우고, 예산에 맞춰서 돈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아직은 습관이 들지 않아서 좀 어렵지만 습관으로 만들려 작은 수첩에다가 적어놓고 매일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다. 




한국에 있을때에는 나시티 입고 다니면 왠지 내 팔뚝 생각 안하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았는데........... 혹은 썬글라스 끼고 다니면 왠지 멋내는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참 정말 별 거 아닌 작은 일에서부터 남의 눈을 신경쓰며 살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도 옷차림에 대한 편견 같은거는 꽤나 고쳐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 더 생각하기로는. 여러번 털리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그냥 나한테 좀 시니컬해졌다. 좋게 말하면 조심성이 생겼다는거다. 어디 나가기 전에 물건 다 챙겼나 몇 번을 확인하고 조금 많이 정신없고 부산했던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 바꿔 생각해보면 내게 닥쳤던 여러가지 악재들 덕택이니. 악재들 덕택에 많이 고쳐야 할 부분들이 손톱만큼 고쳐진 것 같다. 








시간이 잘 흐르는구나. 이제는 4달밖에 안 남았다. 일 년후 나는 어느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한국에 가면 에버렌드와 호프집이 제일 가고 싶다. 아! 김밥천국도. 김밥천국 돈가스김밥이 먹고싶다. 떡볶이에 든 쫄면도. 

에버렌드에 가면 아침 일찍 가서 해 질때까지 놀꺼다. 




불평하며 징징대긴해도 요즘도 이렇게 난 잘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