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6
소소한 로맨스. 대리님들과 퇴근 후 기분 좋게 소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남편이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살짝 취기가 오른덕에 신이 나서 술을 마시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는 신이 난 내 말에 우쭈쭈 하다보니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또 꽃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오늘이 로즈데이잖아 라는 말과 함께. 결혼 후 두 번째로 함께 맞는 로즈데이였는데 덕분에 또 행복하고 로맨틱한 저녁을 보냈다. 다시 생각해도 참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날씨와 풍경, 그리고 미세먼지까지 괜찮은 날이었다. 사람도 적당히 많아서 놀이기구를 타느라 그리 오래 기다리지도 않고 쉬엄쉬엄 군것질을 했고, 동물들도 구경하며 유유자적하며 데이트를 했다. 마지막엔 T익스프레스를 타고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봤는데, 암전 상태에서 오로지 빛으로 꾸며져있어 참 예뻤다. 게다가 공연을 보는동안 사람이 많아서 밀리지 않도록 그가 뒤에서 백허그를 해줬다.
어린이날엔 난타 공연을 봤고 소소한 선물도 받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명동에서 데이트를 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목멱산방에서 식사를 하고, 길거리 음식들을 먹으며 산책을 했다. 날씨가 좋아져서 걷기에도 사진 찍기에도 참 좋았다. 그리고 난타 공연도 재미있었는데 공연을 보는 손님들이 온통 외국인이어서 왠지 해외로 여행을 온 기분이었고 유쾌했다.
계속되는 소소한 데이트. 퇴근을 하고 그와 시간이 맞으면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간다. 치맥을 먹기도 하고 스몰비어 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기도 했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하고. 아, 심야영화도 봤다.
요즘엔 회사에서 아침을 준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매일 달라지는 메뉴에 외면하지 못하고 꼬박꼬박 든든하게 먹고 있다. 게다가 요즘도 친구들이랑 카톡으로 점심 메뉴를 공유하는데 진짜 별것도 아닌데 재미있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서로 호응해주고 짧게 짧게 순간을 공유하는데 소소한데 하루 중 꽤 큰 이벤트이기도 하다는 ㅎㅎ
20대에는 엄마를 같은 여자로써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아빠의 삶에 공감하는 시기인 듯 하다.
어버이날이라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아빠가 살이 빠져서였는지 갑자기 나이가 드신거 같아서 깜짝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아빠와 동생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식사를 했지만, 엄마가 한손에 가득 안겨준 반찬과 엄마가 써준 편지를 들고 집에 돌아오던 차 안에서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진짜 부모님한테 무심했다라는 생각, 아직까지도 나는 지독하게 내 생각만 하는구나 라는 자책감, 그리고 되려 내 걱정을 해주는 엄마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창피함 때문이었다.
비슷한 나이대인데 자녀를 키우는 회사 동료들을 보면서 엄마아빠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시절에 결혼을 해서 나를 낳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내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사진으로 남겨 앨범들을 만들었도 심지어 나를 아기천사라고 하시며 목사님께 내 인생을 축복하는 아기 기도도 받으셨다. 내게 좋은 걸 먹여야했으니 할머니의 귀한 아들이었던 아빤 늘 남는 과일 꼬다리나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임박한 우유를 마시는게 일상이었을꺼다. 낳아달라도 해서 태어난게 아니니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내 이기심이 부끄러웠던 어버이날이었다. 이제는 엄마만 챙기지 말고 아빠도 생각하고 챙겨드려야지라는 생각에 자꾸 울컥하게 된다.
2019년 5월. 날씨만큼 따뜻하고 예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