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3
9월이 지난지 한참이지만, 그 이후의 근황.
연휴가 시작되던 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하루는 시댁 식구들과 그리고 다른 하루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생일 당일 아침에는 그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듬뿍 넣어 미역국을 끓였고, 점심에는 63빌딩에 가서 식사를 했다. 와인 한 잔씩 곁들여 코스로 먹었는데 음식도 맛있고, 직원들이 음식 하나하나 설명도 곁들여줘서 그 분위기를 더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작지만 내가 준비했던 깜짝 선물로 하루를 꽉 채웠다.
이번 추석은 남편과 함께 시댁을 들렀다 우리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남편의 큰 집에서 친척 분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오전 모임이 끝나곤 시부모님 댁에서 같이 티비를 봤는데 마음이 편해져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푹 자고 일어나서는 아주버님 부부와 함께 넷이서 방탈출 카페에 갔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엔 결혼 후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를 뵈러 시골에 내려갔는데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남편이 있으니 세삼스레 우리가 가족이고 부부라는게 실감이 났다.
달달한 밤과 따뜻한 카스테라가 자꾸 먹고 싶은 걸 보니 정말 가을인가보다. 시댁에서 받아온 밤으로 밤 맛탕을 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퇴근하고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밤을 씻고 뜨거운 물에 담가뒀다가 밤껍질을 깠다. 알맹이는 전자렌지에 5분 정도 돌려서 살짝 삶았다가 프라이팬에서 적절히 조리하면 훌륭한 간식이자 맥주 안주가 된다. 밤을 감싸고 있는 달달한 당 덕택에 오랜만에 꿀맥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주말 아침에는 일찍부터 일어나서 카스테라를 만들었다. 달달한 빵냄새가 집에 그윽하게 차는동안 커피를 내렸는데 무척 뿌듯했다. 부족한 손재주지만 내 손에서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 이런 날 위해 남편과 친구들이 오븐과 제빵기구 그리고 슈를 선물해줬다. 주말에 비스켓을 구워봤는데 오븐 안에서 내가 만든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오븐에서 알람이 울리고 남편과 우유를 곁들여 먹었는데 다음엔 지인들에게도 선물해봐야겠다.
회사 차장님과 르누아르 전시회에 다녀왔다. 회사 사람과 따로 시간을 내서 회식 외 여가 생활을 보낸건 처음이었는데 차장님과는 취향이나 정서가 잘 맞아서 꼼꼼하게 잘 구경하고 올 수 있었다. 르누아르는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전시회였는데 그의 밝고 부드러운 그림이 정말 좋았다. 선이 둥글둥글한 여자들과 사랑스러운 미소. 사진도 사랑하는 사람이 애정을 담아 찍어주면 더 잘나오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잘은 몰라도 그가 그의 뮤즈들을 그릴 때 애정이 담겨 더 장점이 잘 살려진 예술 작품이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굵곡진 그의 삶 속에서 밝고 아름다운 것들만 그려냈다는 것에 대해서도 존경심이 들었다. 나도 그처럼 탁한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끄집어내고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8월 말부터 매주 주말마다 집안 행사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이번 주말은 집안 일정 없이 우리 둘이서 보냈다. 그가 아침을 먹은 다음 너무 오랜만의 휴식이라 그랬던건지 종일 폭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났다. 같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엔 오븐으로 소금새우구이를 만들어 청하와 함께 먹었는데 집의 은은한 조명과 선선한 공기 때문인지 멀리 여행 온 기분이었다. 늦은 새벽까지 수다를 줄기다 다음 날은 그와 서울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전엔 그가 학회가 있어 연애 당시에 데이트 할 때마다 만났던 장소에서 그를 기다렸다.이렇게 만나니 옛날 생각이 난다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나 역시 모처럼 밖에서 만나 여유롭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렇게 가을도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