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 3주차
1.
근 몇 달동안 회사 사람들이 꾸준히 그리고 많이 퇴사를 하고 있다. 퇴사에도 시즌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한편으론 남아서 일하는 사람으로써 맥이 빠졌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 타고 가라앉는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출근 길과 근무 시간은 늘 고되고 마음이 어려웠다. 그래서 머리를 식힐겸 금요일엔 당일치기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수갱일 만났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다 돌아왔다.
옛날 사진첩을 꺼내보니 몇 년전에도 나는 사는게 지쳤다며 수갱이랑 같이 영종도에 갔다. 그때도 우리는 해가 지는 바다를 보면서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마셨던 생각이 난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내 인생의 암흑기에 수갱이가 힘내라며 위로해줬었는데, 이번에도 그때처럼 해지는 바다를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그동안 각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보고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지 약간 숨 돌리는 정도의 시간은 되었던 것 같다.
단순히 친구 만나러 간 제주도는 진짜 예뻤다. 한산하고 길가에 꽃도 많고,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나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무척 친절하셔서 짧은 시간이지만 기분 좋게 다녀왔다. 그리고 걷기 좋아하는 수갱이 덕택에 정말 원없이 걷다 왔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도 뭔가 무덤덤하고 심드렁했는데, 이런 시원한 바다와 꽃을 끼고 오랫동안 걷고 길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다음에는 혼자 가지 말고 애들이랑 시간 맞춰서 우르르 가야겠다.
2.
제주도를 다녀온 다음날엔 남친이 너무 피곤하다며 하루 푹 쉬고 저녁 늦게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내 일정 다 끝내고 오후에 집에 갔더니만 깜깜한 집에 뭔가 둥근 물체들이 주렁주렁 바닥에 붙어있었다. 불이 켜지고 땀에 쩔어있는 그가 나와 결혼해줘 라며 꽃다발이랑 팔찌를 줬다. 나는 결혼하기로 하고선 뭔 결혼 해달라는 소릴 하냐며 핀잔을 줬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이 마음 바뀌었을수도 있지 않냐며 우리가 사귀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이어서 동영상도 보여줬다. 소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나름의 깜짝 이벤트라 눈물이 찔끔 났다.